[광화문]다섯번째 불매운동이 성공하려면

머니투데이 송기용 산업1부장 2019.07.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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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한국의 일본제품 불매 운동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한국 불매운동은 25년간 불발의 역사였다'라는 꽤나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칼럼을 쓴 사와다 가쓰미 일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은 서울지국장으로 한국에 거주하며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4차례 경험했다고 한다. 1995년 역사바로세우기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파동 △2005년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2013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정부 관계자 파견을 계기로 불매운동이 일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이 해방 50주년을 맞아 ‘역사 바로 세우기’를 외쳤고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체됐다. 당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제 담배 화형식까지 벌어졌지만 수입담배 1위 마일드세븐의 한국 점유율은 전년도 3.5%에서 5.7%로 오히려 증가했다.

"한국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경험한 사실을 열거한 것 뿐이다. 한국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생각보다 효과가 없고, 일본에서 (반한감정을 조장해) 악영향만 불러일으키는 게 아쉬워 칼럼을 썼다."



한국의 불매운동에 일본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양국 관계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그 배경과 파장을 폄훼하는 발언이다.

습관적인 '반일 애국 증후군’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일본 제품을 실제로 불매한다기보다는 인터넷에서 '나 이렇게 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행동”이라고 한국인을 깔보는 발언을 늘어놨다 .

하지만 일본 예상과 달리 불매운동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불타오르고 있다. "한국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최고재무책임자(CFO) 발언으로 화를 자초한 유니클로 매출은 30% 이상 감소했다. 대형마트, 편의점에서 빠진 아사히 맥주는 재고처리를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규슈, 오키나와 등 일본 지방도시는 한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끊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좀처럼 내색하지 않던 일본 정부도 관광 보이콧에는 동요하는 눈치다.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5일 "한국인 관광객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인들의 예상과 다르게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것은 일본이 우리 경제에 직접적이고 강도높은 보복조치를 가했기 때문이다. 독도 영유권, 한일합방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 망언을 계기로 벌어졌던 과거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자랑이자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다. 일본이 많고 많은 소재·부품 가운데 에칭가스 등 반도체 소재 3개를 콕 집어 제한한 것은 한국 경제를 망쳐 놓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생존권 차원에서 불매운동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의 착각과 달리 불매운동이 정부가 아니라 순수하게 민간에서 조직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한다'는 분노 아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특히 IT 강국, 세계 최고의 모바일 문화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불매 대상 일본 제품을 소개하는 '노노재팬'이라는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과정을 보면 불매운동이 소비자주권 운동으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사와다 부장은 한국이 성숙한 시민사회이기 때문에 불매운동이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 이후 성숙한 만큼 정치적 동기를 가진 일부 사람에 의한 불매운동이 다수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번 불매운동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소동'이라는 일본의 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도 더욱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소비자 개개인의 성숙한 노력이 모인다면 우리 정부가 일본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광화문]다섯번째 불매운동이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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