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은데 하락·쇼크땐 반등...'주가법칙'이 흔들린다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19.07.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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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순환매 장세…증시 역흐름 만연

최근 증시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기업들의 실적 전망에 연동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하반기에는 오히려 호 실적이 나오면 주가가 하락하고 되레 실적쇼크 기업들의 주가가 반등하는 등 기존 주가법칙이 흔들리고 있다.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증시에 대응하는 과정에 자금흐름이 빨라져 순환매 주기가 짧아진 영향 때문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롱숏(상승 가능성이 높은 종목은 사면서 하락할 것 같은 종목을 공매도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반대로 하는 변형매매도 늘어나고 있다.



23일 증시에서 제일기획은 장중 7% 넘는 하락률을 기록하는 등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이틀간 10% 가량 하락 폭을 보였다. 실적발표 직전에는 오히려 공매도가 하루 거래량의 20~30%에 달하는 등 기승을 부렸다.

의아스러운 것은 제일기획 (18,750원 ▲30 +0.16%)에 별다른 악재가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올해 2분기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고 하반기에도 전망이 좋아 증권가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제일기획이 22일 발표한 2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총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9% 증가한 3079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9.2% 증가한 693억원이었다. 이는 컨센서스(시장전망 평균)를 각각 4.5%, 7.9% 상회한 수치였다.
실적 좋은데 하락·쇼크땐 반등...'주가법칙'이 흔들린다


한화투자증권에서는 제일기획이 올해 연간 매출총이익 1조1800억원, 영업이익 2109억원을 달성해 전년대비 각각 8.7%, 16.4%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제일기획에 비해 실적 개선세가 밀리는 경쟁사 이노션은 오히려 최근 주가가 강세다. 최근 4일간 5%에 가까운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고 23일에도 2% 가량 강세로 마감했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이노션 (22,850원 ▲100 +0.44%)은 2분기 매출총이익 1207억원, 영업이익 295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매출총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하지만 영업이익은 0.9% 감소하는 수치다. 그럼에도 23일 외국인은 '제일기획 매도-이노션 매수'를 택했다.


보령제약 (10,930원 ▼20 -0.18%)도 마찬가지다.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11%, 172% 늘어난 1273억원, 114억원을 기록했는데 영업이익률이 무려 9%로 5.3%포인트나 개선됐다. 그러나 쏟아진 외국인 매물에 오히려 주가는 2.3% 약세로 마감했다.

반대로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사업 부진으로 2분기에 시장 전망을 밑도는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기 (146,200원 ▲1,700 +1.18%)는 최근 연이은 강세다.

이처럼 '실적개선→주가상승'이라는 기본법칙이 흔들리는 것은 오랜 주가 부진으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데다, 순환매 주기까지 빨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실적호전 등으로 주가가 오르더라도 폭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한발 빨리 주식을 매도해 수익을 확보하는 움직임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대부분 기업들의 주가가 밸류에이션 저점까지 밀린 상태라 일시적으로 더 밀리더라도 기존수준까지는 회복되곤 한다"며 "이 때문에 악재가 터질 경우 오히려 주식을 매수해 반등이익을 얻으려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제일기획과 이노션은 실적과 무관하게 업종평균 PER(주가수익비율)과 격차가 벌어진 종목에 '매도-매수'가 동시에 이뤄지는 순환매의 대표 사례라는 지적이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제일기획의 경우 장기전망이 좋지만 일단은 비즈니스 구조가 비슷한 이노션과 상대적으로 벌어진 밸류에이션 갭을 줄여가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증시와 비교해 주가 수익률은 물론 기업들의 실적 추이도 좋지 않다. 이 때문에 박스권 주가와 순환매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24개 신흥국(MSCI기준) 가운데 주식 수익률 기준 △연간 20위(-9.0%) △3개월 20위(-6.7%) △1개월 16위(0%) 등을 기록했다.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연간 -36.3%로 최하위다. 여기에 반도체 실적둔화, 일본과의 반도체 소재분쟁, 내수경기 둔화 등 악재란 악재가 모두 겹친 상태다.

이창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한국경제의 이익감소와 경제지표 부진 등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지속되는 상황"이라면서도 "코스피200 지수 등 주가 전반은 과매도에 근접한 상황이라 박스권 흐름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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