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홍콩 송환법 보류' 뒤엔 다른 이유가?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19.06.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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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홍콩은 中경제 안전밸브
상하이로 기능 이전 하고 싶지만
무역분쟁 중인 현재는 보호해야"
20~21일 북한 방문도 이유 꼽혀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홍콩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송환법(인도법) 개정안을 예상보다 빨리 보류한 배경을 두고 색다른 분석이 나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을 넘어 다른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20일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중국 공산당 관계자를 인용해 최근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법 철회 결정에 대해 "외신이 잘못 전하고 있다"며 "(중국) 지도부는 국내 경제와 국제 상황을 보고 그저 한발짝 물러나기로 정한 것일 뿐"이라고 보도했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인데, 홍콩 시민들은 인권운동가, 반정부인사 등을 중국 본토로 보내도록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지난 15일 홍콩 정부는 해당 법안 처리를 보류하겠다고 밝혔으나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다음 날인 16일 시위에 9일 시위 참여인원(103만명)의 두 배에 달하는 200만명가량이 참여했다.

보류 직전까지도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홍콩 정부의 반전에 중국 중앙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시진핑 주석의 권위에 생채기가 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닛케이가 인용한 관계자는 주석이 "보류 결정을 마지못해 내린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을 살펴보자면 홍콩과 시 주석의 경제개발계획의 관계로 거슬러간다. 홍콩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아래 국제 상업도시 지위를 누렸다. 반환에 앞서 영국과 중국이 2047년까지 홍콩의 정치·입법·사법체제의 독립성을 보장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사진=AFP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사진=AFP
그러나 상하이 당 위원회 서기 등을 하며 권력을 잡은 시진핑 주석은 경제의 중심을 홍콩·마카오 등에서 상하이로 옮겨오길 원했다. 닛케이는 "급성장하는 상하이가 홍콩의 금융과 무역 기능을 흡수하는 것이 시 주석의 비전"이라며 "홍콩의 기능을 인근 지역인 선전과 광저우로 옮기는 것도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2월 당국은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웨강아오대만구' 조성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선전·광저우 등 광둥성 주요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연결하는 단일 경제권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해 어그러졌다. 미국 시장 진출과 증시 상장을 노리던 중국 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피하려 홍콩을 '임시방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알리바바가 최근 홍콩 증시에 2차 상장하기로 한 것도 "미국의 압박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 전략"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닛케이는 오는 28일~29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둔 중국에 홍콩은 "중요한 체스 말(important chess piece)"이라고 표현했다. 중국 본토에 대규모 관세가 부과된 시점에 미국이 홍콩이 누려오던 상업과 무역 특권을 철회해버린다면 '안전밸브(safety valve)'마저 잃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서방이 중국에 경제제재를 가했을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중국에 외국 자본이 들어올 창구 역할을 수행, 중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한 바 있다.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는 모습을 21일 보도했다. 2019.06.21.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는 모습을 21일 보도했다. 2019.06.21. (출처=노동신문) [email protected]
닛케이는 또다른 신속한 보류 결정의 이유로 '시 주석의 방북'을 꼽았다. 20~21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 지도자로서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대화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시 주석의 방북은 G20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기회다. 그러나 홍콩 시위가 더욱 격화되고, 시위대 탄압 영상 등이 퍼져 국제 사회의 비판이 커지면 중국은 외교적으로 난처해질 수 있다.

이 매체는 이어 홍콩 정부의 성급한 법안 통과 시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원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목표로 한 인도법 개정안 최종 표결 날짜는 이달 27일로, G20 회의 참석을 위해 시 주석이 일본 오사카에 도착하는 때였다. 그러나 G20 회의 도중에 표결이 이뤄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면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시 주석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위험이 있었다.

홍콩 당국은 이를 의식해 법안 표결을 20일로 한 주 앞당겼는데 이것이 오히려 반발을 키웠다. "시 주석의 방북으로 뉴스를 도배하려 했지만 홍콩 사태가 외신 헤드라인을 채우게 됐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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