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대화론·美… 홍콩 '송환법' 보류 끌어낸 3가지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2019.06.1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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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법안 처리 무기 연기 발표…100만명 시위대, 친중파·재개 내부 우려·G20 미중 무역담판 부담 등 고려한 듯

【홍콩=AP/뉴시스】14일 홍콩 차터가든 공원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 반대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시위자가 '우리 아이들에게 총을 쏘지 말라'는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주최측 추산 6000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렸다. 2019.06.15【홍콩=AP/뉴시스】14일 홍콩 차터가든 공원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 반대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시위자가 '우리 아이들에게 총을 쏘지 말라'는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주최측 추산 6000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렸다. 2019.06.15


15일 홍콩 정부가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을 전격 보류했다. 아직 '법안 철회' 의사를 밝히지 않는 등 불씨가 남아있지만 재추진 일정 제시하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밝히면서 홍콩섬을 달궜던 송환법 논란은 시위에 적극 나섰던 시민들의 승리로 평가된다. 보류 직전까지도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홍콩 정부의 반전을 끌어낸 원동력은 '100만 명 시위', 친중파 재계 등 현 정부 지지층의 우려,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등 국제 사회의 관심 등으로 요약된다.



◇2차 '100만 시위' 앞두고 "송환법 무기 연기"

16일 외신 등에 따르면 우선 1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가 법안을 보류시킨 직접적인 동력으로 풀이된다. 강경 입장을 고수했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법안 보류'를 발표한 시점은 16일 또 한번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하루 전이었다. 주최측 추산 103만 명이 참여해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했던 지난 9일 시위에 이어 이날도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9일 시위 참여자의 30%가 거리 시위에 처음 나왔다 밝혔으며, 이러한 흐름이 16일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홍콩 전체 인구가 720만 명 정도로 7명 당 1명 이상의 시민이 거리로 나온 셈이 된다. 홍콩 경찰 병력은 3만 명 정도로,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모이면 통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현지의 평가다.



규모 못지 않게 열기도 뜨거웠다. 법안 심사가 예정됐던 지난 12일에는 평일 아침부터 수만명의 시위대들이 입법회 건물 주변 주요 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행정 장관의 완전한 직선제 선출 등을 요구했던 '우산 혁명' 실패 이후 주춤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홍콩 시민들의 열정과 행동이 '송환법' 논란을 계기로 다시 불붙었다는 평가다.

이번 법안은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망친 홍콩인의 대만 인도 필요성이 제기 되면서 추진됐다.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이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 등을 본토로 송환하도록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 법 체계가 적용되면서 자유가 억압받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홍콩=AP/뉴시스】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현지시간) 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06.15【홍콩=AP/뉴시스】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현지시간) 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06.15
◇친중파·지지층서 제기된 '대화론'


현 집권층의 지지 기반인 친중파와 재계에서 처리 강행에 대한 우려 나오는 등 '대화론'이 제기된 것도 극적인 반전에 일조를 했다는 분석이다. 람 장관의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버나드 찬 의장과 전직 관료, 입법회 의원 등 친중파 진영에서는 지난 12일 시위 이후 범죄인 인도 법안을 연기하고 시민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졌다. 전직 경제장관, 전직 정무장관, 전직 보안장관 등 전직 고위 관료와 전직 입법회 의원 22명이 연대 서명한 서한을 통해 현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홍콩 의회인 입법회는 전체 의석 70석 중 친중파가 43석가량으로 안정적인 과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친중파 내에서 균열이 있을 경우 법안 표결 자체를 자신할 수 없다.

친중파의 기반이 되는 재계에서 법안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도 변수가 됐을 수 있다. 이번 법안에는 중국 본토에서 발생한 범죄와 관련해 중국 법원이 홍콩 내 자산의 동결과 압류를 명령할 수 있는 조항도 들어가 있다. 사유재산 보호가 철저한 홍콩 내 자산이 중국 정부의 사정권 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 부자들로선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홍콩 재계를 대표하는 아론 하리레라 홍콩총상회 회장은 지난 13일 "우리는 이 법안의 기본 원칙에 동의한다"면서도 "홍콩 정부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계속 경청하고 국민과 의미 있는 대화에 임할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고 말했다.

◇G20 담판 앞두고 있는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미국과의 담판을 앞두고 있는 중국 정부의 부담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람 장관은 전날 '송환법 보류'가 자신의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외신들은 람 장관이 발표 이전에 중국 최고지도부에서 홍콩 업무를 담당하는 한정 상무위원과 만났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 언론들은 중국 정부의 관료들이 이번 주말 홍콩에 인접한 선전으로 내려와 보류 발표 이후 홍콩 분위기 등을 살펴봤다고 덧붙였다. 홍콩 정부의 입장이 바뀌는 과정에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골치가 아픈 중국 정부의 입김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는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앞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내 혼란이 계속 될 경우 전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시위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등 국제 사회의 높아진 관심도 무역협상을 앞두고 우군 확보가 절실한 중국 정부에 불안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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