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밴더빌트. /사진=AFP
이날 쿠퍼는 7분 가량의 보도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회고했다. 그는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던 삶을 사랑한 비범한 여자였다"며 "화가, 작가, 디자이너였던 동시에 뛰어난 어머니, 아내, 친구였다"고 되짚었다. 그러면서 "글로리아는 95세였지만 그와 가까운 이들은 그들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젊고 멋지고 현대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리아는 19세기 후반 당대 미국의 최대 부호였던 '철도왕'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1794~1877)의 후손이다. 남북전쟁 후 철도 사업에 집중 투자해 어마어마한 부를 일궈낸 밴더빌트 가문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왕' 존 록펠러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부호 가문으로 꼽힌다.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어린 시절. /사진=AFP
글로리아는 상속녀로서의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15세부터 할리우드로 가서 모델 활동을 시작했고 20세 중반부터는 화가가 됐다. 청바지 디자이너로도 높은 평판을 얻었다. 그는 1969년 '글로리아 밴더빌트 디자이너 진'을 설립해 백조 로고가 달린 청바지를 선보였다. 1980년 글로리아는 청바지 사업으로 연간 2억달러(약 237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젊은 시절.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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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는 총 네 번 결혼했다. 17살에 영화 제작자인 팻 디치코와의 처음 결혼했으며 두 번째 남편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세번째 남편은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 네번째 남편은 작가 와이엇 쿠퍼였다. 글로리아는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결혼은 쿠퍼와의 결혼생활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와이엇 쿠퍼는 결혼 15년 만에 심장 수술을 받다 세상을 떠났다.
글로리아는 화가와 작가, 시인으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첫째 아들 카터 쿠퍼가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후 1995년 아들을 회고하는 책을 집필했다. 이외에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에 관한 책들을 다수 썼다.
글로리아는 죽는 날까지 사랑을 믿는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앤더슨 쿠퍼는 어머니에게 아직도 사랑을 믿느냐고 묻자 어머니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이지(absolutely)"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2004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글로리아는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면서 "항상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항상 나에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글로리아 밴더필트와 그의 아들 앤더슨 쿠퍼. /사진=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