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맛집 물려받으실 분?" 후계자 오디션 보는 日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5.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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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후계자 없는 요식업체 70%
취업호황에 '힘든 일' 마다하는 자녀들
후계자 공모하고 오디션 봐 뽑기도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그동안 고래 덕분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52년간 고래고기 전문점 '토쿠야'을 운영해온 오오니시 무츠미(76)씨가 며칠전 마지막 소감을 전하자 매장 80여석을 꽉채운 손님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츠미씨는 시원섭섭한 감정이 교차한듯 입술을 질끈 깨물며 촉촉해지는 눈가를 훔쳤습니다. 일본이 1963년 상업 포경을 중지하면서 고래 고기 수급이 어려워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수십년을 버티며 지역에서 맛집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허무하게도 가게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서 결국 폐업을 결정한 것입니다.

/사진=토쿠야 SNS/사진=토쿠야 SNS
일본은 일손 부족으로, 또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폐업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파산한 기업은 1년새 7.6% 늘어난 269곳이었습니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2025년이면 127만개 중소기업들이 폐업 위기에 빠진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일본 기업 중 후계자가 없는 곳은 66.4%에 달하는데, 요식업계가 포함된 서비스업은 이 비율이 70%를 넘어서 가장 문제가 심각합니다.



후계자 고갈 사태는 일본의 취업시장 호황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일본은 3월 완전실업률이 2.5%로, 20여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일하고 싶지만 일주일에 1시간도 일을 못한 완전실업자는 총 174만 명으로 인구의 1.4%에 불과합니다. 취업 시장이 워낙 호황이다 보니 굳이 고된 노동이 필요한 가업 승계를 제쳐두는 자녀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설사 후계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평균 1년이 넘는 수련 과정을 거치며 식재료 조달, 조리 방법, 가게 운영법 등을 배우다 보면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이 과정을 다 감내하고 가게를 떠안았다고 해도,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가게를 리모델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입니다.

다카바야시 히로부미(88)씨는 70년간 '원조 매실잼'으로 유명세를 얻은 '매화본점'을 2017년말 폐업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두 아들을 앉혀놓고 "가업을 안 도와도 되니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선언한 뒤 20년간을 버티다가 건강 악화로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히로부미씨의 두 아들은 각자 원하는 기업에 취업하는 인생을 택했습니다. 매실잼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어떻게든 업체를 살려보자며 움직인건 고객들이었습니다. 히로부미씨에게 후계자가 되고 싶다며 이력서를 내는 이들이 나타났고, 400엔(약 4300원)짜리 매실잼 한박스는 인터넷에서 60배가 넘는 2만5000엔(약 27만원)에 거래가 되는 등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히로부미씨는 그냥 조용히 영업을 중단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이만하면 할만큼 했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사진=트위터 캡처./사진=트위터 캡처.
반면 50~70년된 역사깊은 맛집들을 지키기 위해 후계자 모집 광고를 내고 오디션을 보거나, 오히려 이러한 폐업 위기의 매물만 찾아다니며 M&A(인수합병)을 하겠다는 기업들도 생겨났습니다.

도쿄의 한 장어구이집은 후계자 모집 공모 끝에 한 외식기업을 후계자로 선정하고 4년간 직원들에게 비법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겐 절대 사업을 넘기지 않겠다고 했지만, 회장이 직접 찾아와 설득전을 펼치자 결국 가게를 넘기기로 했습니다. 한 유명 소바집은 창업 경험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6개월간 레시피를 전수한 후 사업을 승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3월말에는 폐점 예정인 60년 전통의 소바집을 과거 여기서 일했던 알바생이 인수했습니다. 이제는 유소년 축구팀 감독이 된 알바생은 폐업 소식을 듣자 "문을 닫지 말고 나에게 달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 역시 1년여간 식재료 관리, 조리법 등은 주인장한테 배운 후 똑같은 자리에서 이름만 바꾼채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본 지자체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후계자를 찾지 못해 고민인 업체들을 대신해 공모 공고를 내고 후계자를 찾아주고 있습니다. 홋카이도 네무로시의 한 재즈카페는 이 제도를 이용해 후계자를 공몽했지만 결국 지난 3월말 4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폐업했습니다. 희망자는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방 등 외진 곳은 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입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나가하마라멘의 발상지인 후쿠오카시 나가하마지구의 야타이(포장마차) 거리도 6년전만해도 15개 업체가 몰려있었지만 현재는 4곳만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일왕 퇴위와 즉위에 맞춰 총 10일간 황금연휴를 보냈던 일본이었지만, 지난 1일 이 거리는 한적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습니다. 고령의 주인들이 떠나고 시의 정책 때문에 강제이주 등을 한차례 겪자 아예 새로이 출점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의 브리즈베이호텔 체인은 후계자 문제를 겪는 호텔이나 여관을 인수하겠다고 공모를 하기도 합니다. 일본의 숙박업체들도 후계자를 못정한 비율이 50.6%돼 줄폐업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후계자 부재로 인한 폐업이 전통의 맛집이 사라졌다는 것 외에 지역주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이 단 526명에 불과한 홋카이도 에리모초의 한 작은 마을은 지난달 30일 마을 유일의 슈퍼마켓이 문을 닫으면서 난감해졌습니다. 85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이름만 '슈퍼마켓'일 뿐 주민들이 필요한 모든 걸 구입할 수 있는 '만물상'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도 결국 후계자 부재와 주인의 건강문제로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한자리에서 수십년간 자리를 지켜온 주인장들은 다음 세대로 맛을 전수하는 대신, 기억 속에서 잊혀지려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할아버지 세대 때부터 일궈온 사업을 자녀도 아닌 생판 모르는 남에게 물려준다는게 쉽지는 않은 일일 듯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맛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지역의 역사, 명물이 사라진다는 점에선 이를 막을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인싸Eat]"맛집 물려받으실 분?" 후계자 오디션 보는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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