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를 어이할꼬…부진한 실적에 고민 깊어진 은행들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19.05.2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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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제로페이 결제액 13.6억, 서울시 올해 목표치 0.015% 그쳐

'제로페이'를 어이할꼬…부진한 실적에 고민 깊어진 은행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출범한 '제로페이'의 실적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 기조에 맞춰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마냥 제로페이 활성화를 바랄 수만은 없는 복잡한 속내가 감지된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은행의 올 1분기 제로페이 결제 건수는 6만1790건, 결제 금액은 13억6058억원에 그쳤다. 서울시가 '시정 4개년 계획'을 통해 발표한 올해 목표한 금액(8조5300억원)의 0.015%에 해당하는 저조한 수치다.



은행별로 결제 건수와 금액을 살펴보면 우리은행이 2만6223건, 5억4202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신한은행이 1만1550건, 2억1633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전·현 서울시 금고지기인 두 은행이 상위권에 올랐지만 실적 자체만으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란 평가다.

특히 IBK기업은행과 NH농협은행은 3개월 동안 결제액이 각각 3461만원, 3177만원으로 1억원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832만원에 그쳤지만 금융그룹 차원 멤버십 애플리케이션(하나멤버스)의 제로페이 실적이 제외된 수치로, 이 수치를 합산하면 1억원대의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제로페이를 바라보는 은행권의 시각과 연결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은행 입장에서 제로페이는 이체 수수료 이익은 없으면서 운영비용만 들어 은행 수익성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제로페이가 흥행할수록 계열사나 은행 내부에 있는 카드 부문의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민이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은 그룹 내에 카드사가 계열사로 있고,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은 은행 내에 카드사업 부문이 있다. 결국 제로페이 실적이 오를수록 집안 내 동생의 먹거리를 빼앗아 오는 꼴이기 때문에 제로페이 활성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각 은행별 제로페이 결제 방식과 명칭이 다르고, 결제를 위해 새로운 앱을 또 깔아야 하는 등 제로페이 출시 이후 은행앱을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계속됐지만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


IBK기업은행은 최근에야 은행앱 내 제로페이 서비스 명칭에 제로페이를 명시하기로 했다. 기존 'IBK뱅크페이'란 명칭으로 서비스하던 것을 'IBK제로페이'로 바꾼 것이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뱅크페이'보다 인지도가 더 있는 '제로페이'로 이름을 바꿔 고객의 혼선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제로페이 드라이브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은행들이 부진한 제로페이 실적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제로페이 실적 끌어올리기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현재 제로페이 이용 고객과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 커피나 무선청소기 등 각종 경품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로페이 흥행이 은행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은행이 앞장서 활성화를 이끌기엔 부담이 따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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