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제비/사진제공=강성규 부산스런미디어 대표
워낙 수제비를 좋아 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일주일에 최소 3끼는 수제비를 먹었을 정도다.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께 수제비를 끓여 달라고 부탁해도 어머니께서는 싫어하는 기색 없이 그 자리에서 뚝딱 반죽을 만들어 따듯한 아랫목에 담요로 덮어 두었다. 그래야만 반죽이 잘 숙성돼 나중에 뜯을때 쉽고, 더 쫄깃해 진다고 하셨다. 매번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도 수제비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2시간이 지나 반죽이 어느 정도 숙성 됐다 싶을 때 멸치, 양파, 대파, 다시마 등을 넣고 물을 끓여 육수를 준비한다. 육수가 보글보글 끓어 오르면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 수제비를 뜯는다.
수제비를 뜯는 것은 얼핏 쉬워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잘 못 뜯으면 수제비가 잘 펴지지 않고 울퉁불퉁 두껍다. 반죽을 잘 펴서 얇게 뜯어 넣어야 맛이 좋은 건 자명하다.
수제비의 요리법은 다양하다. 담백하게 파와 다진 마늘만 넣고 조리할 때도 있고, 감자, 호박 등을 다양한 야채를 넣어 끓일 때도 있다. 김치와 고춧가루를 넣는 등 맛의 변주도 가능하다. 기분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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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것이 먹고 싶을 때는 김치를 넣어 끓이고, 그냥 담백하게 먹고 싶을 때는 양념 간장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좋다. 양념 간장은 집에서 직접 메주로 담은 국 간장에 다진마늘, 파, 깨소금, 고춧가루, 참기름 등 갖가지 양념을 더해 만든다. 양념장을 수제비와 곁들이면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국물에 후추를 치면 매콤한 향이 살아나 더 입맛을 돋운다.
해장을 원하거나 얼큰한 맛이 땡길 때는 익은 김치를 듬뿍 넣어 끓인다. 김치 국물 맛이 제대로 우러나면서 해장이 되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다. 수제비를 다 먹은 후 국물에 말아 먹는 밥은 별미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반반 넣어 끓이는 이른바 '칼제비(칼국수+수제비)'도 좋은 대안이다.
수제비의 또 다른 변주는 경상도 지방에서 주로 먹는 '갱이죽'이다.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김치, 밥, 수제비, 콩나물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 끓인다. 수제비 대신 소면을 넣거나 떡국 떡을 넣어 끓이기도 한다. 하지만 수제비를 넣은 갱이죽이 최고다.
삼청동수제비, 여의도 영원식당, 팔당 인근 창모루(칼제비) 등이 수제비를 잘한다. 하지만 수제비는 가장 보편적인 서민 음식이라는 점에서 웬만한 식당이라면 기본적인 맛은 낸다.
수제비 집 가운데 어머니 손맛과 가장 가까운 집을 꼽자면 노량진 컵밥거리에 위치한 '노량진 수제비'다. 길거리에서 서서 먹어야 하는 불편함을 빼고는 탓할 게 없다. 늦은 시간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가다 생각나 일부러 들러 한 그릇 뚝딱 비우기도 한다. 멸치 육수에 담백하게 끓여내 "수제비는 이래야 한다"는 정석을 보여준다.
어머니국시방의 김치 칼제비
오늘 저녁은 수제비를 끓여봐야겠다. 망쳐도 그만이다. 앞으로 실력을 향상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