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세]더블린에서 온몸으로 느낀 주당의 기운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19.02.16 08:09
글자크기

[김경환의 맛으로 보는 세상]5회 이태원 더울프하운드

편집자주 맛있는 음식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정보를 나누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합니다. 저의 미식 경험은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맛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과하게 달거나 맵지 않은 균형 잡힌 음식은 삶의 원동력이자 즐거움입니다. 추억과 정이 깃든 다양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맛으로 보는 세상'(맛보세)으로 여러분께 다가가겠습니다.

더울프하운드의 피시앤칩스/사진=더울프하운드더울프하운드의 피시앤칩스/사진=더울프하운드


"어디서 왔어요? 아일랜드에 왔으면 아이리시 위스키 한잔은 마셔 봐야지. 이 분께 위스키 한잔 주세요!"

정과 흥이 넘쳤다. 묵던 호텔 근처인 동네 펍(Pub)에 잠깐 목을 축이기 위해 들렀을 뿐이다. 사람들은 혼자 바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던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축구 얘기 등 즐거운 얘기들을 흥겹게 나눴다.

사람들은 흥에 넘쳐 술 한잔씩을 돌렸고, 나도 분위기에 편승해 주량을 넘어 과음했다. 결국 다음 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유명한 아일랜드산 위스키 '제임슨'도 그때 처음 접해봤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세계 대표 기업 취재를 위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며칠 동안 출장을 갔을 때 얘기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방문한 더블린. 조용한 분위기인 스톡홀름과 헬싱키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유쾌했고, 친절했다. 술 좋아하고 인심 좋은 한국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일랜드 하면 유럽에서도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술꾼들의 나라로 손꼽힌다. 유럽 국가들 중 순수하게 술을 마시러 2차를 가는 몇 안되는 국가다. 더블린에서의 경험은 정말 유쾌한 추억이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대표적인 가난한 국가였다. 과거 대기근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은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에서도 가장 각광 받는 성장 국가이다. 어려움을 뚫고 성장한 한국과 많은 측면에 닮아 있다. 더블린 시내에 있는 121m 높이 첨탑 '더블린 스파이어'는 아일랜드의 드라마틱한 성장 과정을 상징한다.

아일랜드 더블린을 방문하기 이전부터 아이리시 펍을 좋아했다. 쌉싸름한 맛의 기네스를 좋아해 잘하는 집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곳이다. 바로 이태원에 위치한 아이리시펍 '더울프하운드'다.

더블린 템플바와 같이 그야말로 정통 아이리시 펍으로 부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자 한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인들이 모임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기네스의 쌉싸름한 맛에 반해 십수년 전부터 단골이 됐다. 이 집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기네스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피시앤 칩스' 때문이다. 갓 튀겨낸 대구 튀김에 식초를 뿌려 먹는데 조화가 뛰어나다. 맥주 한잔을 할 때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 소고기와 매쉬 포테이토, 체다치즈 등이 들어간 '쉐퍼드파이'도 좋다.


요즘 젊은 층들이 좋아하는 세련된 '힙'(Hip)한 분위기는 아니다. 동네 호프집 같은 평범한 인테리어는 술 한잔 하러 오는 방문객에 편안함을 준다. 오랫동안 방문해도 질리지 않고 사람을 압도하지 않아 계속해서 들르게 된다. 투박한 아이리시펍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이태원에서 여전히 살아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태원에는 내가 좋아하던 음식점들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들 사라졌다. 벨기에식 홍합찜과 감자튀김을 팔던 유명한 프렌치 브라세리 '라시갈몽마르뜨'가 없어진 게 대표적이다. 추후 '앙드뜨와'(Un deux trois)로 바뀌어 프렌치 브라세리의 명성을 이어갔지만 결국 빠르게 변하는 이태원의 변화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더 이상 라시갈몽마르뜨와 앙드뜨와의 물프리뜨(Moule et Frites·홍합찜과 감자튀김) 요리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은 큰 슬픔이다. 물프리뜨를 하는 곳이 생겨나지만 정통의 맛을 구현한 곳을 찾긴 쉽지 않다.

최근 술을 멀리하는 바람에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추억을 생각하고 오래된 집들이 살아남기를 바라며 피시앤칩스를 먹기 위해 조만간 다시 방문하려 한다.

사진=울프하운드사진=울프하운드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