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기술입국' 마지막 상징, SK하이닉스 품으로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9.05.0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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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엘리베이터 이천 본사→충추로 이전…초고속 엘리베이터 테스트타워 등 그대로 남기기로

'현대아산타워' 테스트타워의 전경./사진=현대엘리베이터'현대아산타워' 테스트타워의 전경./사진=현대엘리베이터


현대엘리베이터의 경기 이천 본사 한쪽에 삐쭉이 솟아오른 초고속 엘리베이터 테스트타워. 언뜻 공장 굴뚝처럼 보이는 이 타워는 높이 205m로 2009년 준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엘리베이터 테스트타워였다.

타워의 이름은 '현대 아산타워'.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 강조했던 기술입국 정신을 오롯이 새겼다. '아산'(峨山)은 정 명예회장의 호다. 테스트타워 1층 기술연구센터의 이름은 정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현정은 현 회장의 남편 고 정몽헌 회장을 기려 '정몽헌 R&D(연구개발)센터'로 지어졌다.



현대그룹이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쪼개져 사세가 기운 뒤에도 현대가의 본류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현 회장은 10년 전 테스트타워 준공 기념사에서 "현대아산타워에는 기술입국 정신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고 정 명예회장의 숭고한 기업가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현대전자의 후신인 하이닉스가 2012년 SK그룹에 매각된 뒤 현대엘리베이 (44,250원 ▲1,050 +2.43%)터가 SK하이닉스 (236,500원 0.00%)와 경기 이천 단지를 나눠쓰면서 셋방살이 아닌 셋방살이 7년을 버틴 것도 그룹 차원의 이런 상징성 때문이었다. 현대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리다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을 매각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의 테스트타워는 그룹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존재가 됐다.



그런 타워를 현대엘리베이터가 결국 SK하이닉스에 넘기기로 한 것은 현대그룹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다. 양사는 2일 경기 이천 단지 내 현대엘리베이터 본사 부지와 공장, 기숙사 건물 등을 2050억원에 매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충북 충주 제5산업단지로 본사를 옮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본사 이전설은 올 초부터 돌았다. 노후된 공장을 증·개축하기 위해 충북·강원지역을 대상으로 새로운 부지를 알아본다는 얘기가 돌면서 이천시까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같은 단지에 위치한 현대엘리베이터와 SK하이닉스가 시설부지를 맞바꾸는 협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날 이뤄진 양사간 매매 계약에선 엘리베이터 테스트타워 등 부속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존치한다는 단서가 눈에 띈다. 타워 높이가 워낙 높은 데다 첨단 공정이 적용돼 철거에 적잖은 돈이 들기 때문이라는 게 양사의 공식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1984년 현대엘리베이터가 터를 잡은 뒤 30여년 동안 쌓인 현대의 역사를 한순간 지워내긴 현대와 SK그룹 모두 부담이 적잖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의 현대엘리베이터 부지 매입으로 현대그룹은 경기 이천 단지 내 지분이 남지 않게 됐다. SK하이닉스로선 수도권정비계획법 규제로 경기 이천 단지를 넓힐 수 없는 상황에서 단지 내 현대엘리베이터 부진 4만444㎡를 확보하면서 다소나마 숨통을 텄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매입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다만 테스트타워는 계약대로 두고 활용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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