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로 쓴 동시…은유의 삶에서 벗어날 기회”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4.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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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첫 번째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낸 가수 김창완…“결핍에 대한 해방감 느꼈으면”

생애 첫 동시집을 낸 가수 김창완은 "동심을 제대로 느낀 건 50세 이후였다"며 "지난 삶의 은유들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생애 첫 동시집을 낸 가수 김창완은 "동심을 제대로 느낀 건 50세 이후였다"며 "지난 삶의 은유들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어릴 땐 동심이 실제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동요 음반을 발표할 때도 그냥 ‘은유의 세계’를 표현한 것뿐이었죠. 동심이 어떤 세상인지는 50세가 넘어서예요.”

가수 김창완(65)의 어린 시절 기억에 동심은 ‘결핍의 무대’였다. 3살 전후에 벌써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 그렇게 은유로 바라본 세상에서 동심 자체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을 가지기까지 반백 년이 걸린 셈이다. 안다고 착각한 결핍을 채워주는 동력은 역설적으로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경계였다.



“개인적 경험으로 유체이탈 상태를 많이 즐긴 것 같아요. 너무 또렷한 존재로 사물을 인식할 땐 동시라는 글이 잘 안 나오는데, 상상도 못 하는 상황에서 글을 쓸 땐 화자인지 관찰자인지 모르는 작품이 나오거든요.”

산울림으로 데뷔해 연기자, 진행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김창완이 첫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을 냈다. 지난 2013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할아버지 불알’ 등 4편을 우연히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은 지 6년 만이다.



그는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북카페 디어라이프에서 열린 동시집 출간간담회에서 한 줄만 읽어도 무릎을 칠 기발한 상상력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의 흔적 51편을 공개했다.

가수 김창완이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열린 동시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가수 김창완이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열린 동시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무지개는 무지게라고 썼어/무지 무서운 개 같지 않아?’(‘받아쓰기’ 중에서) 같은 개구지고 솔직한 화법부터 ‘어둠이 내리고 있는데/밤을 잡으려고/정말 소리 없이 오더군/…/전깃불을 확 올렸더니 기절초풍하면서 달아났어…’(‘밤 잡기’ 중에서) 탁월한 관찰과 묘사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직설의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방귀 소리를 시집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표현하지 못하는 ‘결핍’의 어린 시절에 대한 해방감을 투영하자는 의도에서다. 아이들로부터 시작되는 해방감이 결국 표현의 경계를 허물거나 소통의 장을 넓히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


“음악 작업을 하거나 드라마 연기를 할 때 쉽게 은유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어요. 동시를 만났을 때 다른 길처럼 보였죠. 비상구 같았다고 할까요. 은유의 늪에 빠져나오니, 그 세계가 너무 풍부하고 자유로워 보였어요. 그래서 자꾸 동시를 쓰게 됐죠.”

‘무지개’를 ‘무지게’로 표현하며 변명이라고 하고 싶었던 아이, 어두워진 방에 대한 낯선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아이의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은유의 구속에서 벗어나 동심으로 연결하는 해결책이었던 셈이다.

첫 동시집 낸 가수 김창완. /사진=이기범 기자첫 동시집 낸 가수 김창완. /사진=이기범 기자
김창완은 “아이들은 창피함, 부끄러움, 두려움, 공포 같은 무지갯빛 은유를 뒤집어쓰고 있다”며 “그러니 거침없이 방귀를 뀌어야 한다”고 했다.

“철쭉을 보세요. 하얀 꽃만 있어도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데, 거기에 연두색 물감이 튄 것처럼 미점(米點)이 확 뿌려져 있잖아요. 그게 없으면 철쭉이 아니죠. 작은 꽃 한 송이도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어머 어마한 세상이 있지 않겠어요? 동심을 솎아내면 그게 색감 없는 철쭉과 다를 바 없을 거예요. 그렇게 뿌려놓은 은혜와 다시 만난다는 건 보통 큰 축복이 아닐 겁니다.”

이 깊고 감동적인 설명에 가볍게 해석하려던 동시에 대한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그의 말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부족함을 담은 이 책에서 유쾌함과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피한 수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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