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경제]1000원을 1원으로? 복잡한 리디노미네이션 계산서

머니투데이 안재용 기자 2019.03.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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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위상 상승 회계비용 절감 등 편익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5일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Redenomination)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따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래된 화두인 리디노미네이션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발음하기조차 쉽지 않은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 변동 없이 화폐 호칭을 바꾸거나 단위를 동일한 비율로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1000대 1 리디노미네이션을 하면 1000원은 1원이 되고 만원은 10원이 된다. 1000원 미만 단위는 '달러-센트' 관계처럼 새로운 화폐 단위를 만들게 된다. 과거에 사용됐던 '환' 등이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과거 리디노미네이션을 두 번 실시했다. 1차 리디노미네이션은 1953년 2월15일 한국전쟁 포화 속에서 실시됐다. 전쟁으로 생산활동이 위축되고 거액의 군사비 지출로 물가가 급등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함이었다. 화폐 액면가는 100대 1로 절하하고 화폐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했다.



제2차 리디노미네이션은 10여년 뒤인 1962년 6월10일 실시됐다. 만화 '타짜'에도 등장하는 사건이다. 10환을 1원으로 조정했다. 당시 정부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물가상승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지만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외국인과 기관이 순매도에 나선 25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42.09포인트(-1.92%) 내린 2,144.86를 나타내고 있다. 이날 코스닥 지수는 16.76포인트(-2.25%) 내린 727.21, 달러/원 환율은 4.10원 오른 1134.20원에 거래를 마쳤다. 2019.3.2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외국인과 기관이 순매도에 나선 25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42.09포인트(-1.92%) 내린 2,144.86를 나타내고 있다. 이날 코스닥 지수는 16.76포인트(-2.25%) 내린 727.21, 달러/원 환율은 4.10원 오른 1134.20원에 거래를 마쳤다. 2019.3.2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화폐가치 변동 없는데 왜 하나? 원화위상 높이자=일반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은 초인플레이션 등으로 화폐 신뢰가 무너졌을 때 이를 회복하기 위해 한다.

가장 유명한 초인플레이션 사례인 독일 예를 보면 1921년 1월 0.3마르크이던 신문 가격이 1923년 11월 7000만마르크까지 올라갔다. 1마르크 지폐로 신문한장을 사기 위해서는 7000만장이 필요하다. 수레로 돈을 가져가도 부족할 수 있다. 거래의 수단이라는 화폐 기능이 물리적으로 붕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화폐 액면가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2019년 현재 한국 상황은 정반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0.5%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저물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리디노미네이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환율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29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서울외환시장에서 1135.5원이다. 1달러가 1135.5원으로 교환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1원은 몇 달러로 교환될까? 이날 기준으로 약 0.000881 달러다. 파운드화 기준으로는 0.000675파운드다. '자국화폐/해외화폐'를 사용하는 표기법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보기에 원화는 가치가 떨어져 보일 수 있다.

낮은 원화 위상은 한국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원화국제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환율 계산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물론 일본 경우를 보면 높은 화폐단위가 통화 국제화의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지만 이를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장애물이다.

 추석 연휴를 앞둔 19일 오전 서울 한국은행 본부 지하금고에서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할 명절자금을 방출하고 있다. 2018.9.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석 연휴를 앞둔 19일 오전 서울 한국은행 본부 지하금고에서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할 명절자금을 방출하고 있다. 2018.9.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회계비용 절감, 구체적 편익 추산은 어려워=리디노미네이션은 회계단위를 줄여줌으로써 이에 소요되는 경제적 비용을 줄여줄 수 있다.

지난해 한국 명목GDP(국내총생산)은 1782조3000억원이다. 숫자로만 표현하면 '1782300000000000'원이라는 긴 숫자가 된다. 100억 미만 단위를 절사하지 않았다면 이를 한 눈에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성전자 2017년 연결 매출액은 '239575376000000원(239조5753억7600만원)'이다. 한 눈에 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문제는 회계단위를 줄임으로써 생기는 편익을 액수로 추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추가로 소요되는 시간의 경제적 비용 또는 숫자를 잘못 봐 생기는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이득이 발생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구체적인 금액으로 이를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 1000대 1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효과성 문제도 거론된다. '0' 세 자리를 없애도 큰 이득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2017년 매출액을 놓고 비교해보면 '239575376000000'이나 '239575376000'이나 눈이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6자리 이상 조정되는 것이 아닌 경우 실익이 없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이지경제]1000원을 1원으로? 복잡한 리디노미네이션 계산서
◇무시할 수 없는 비용, 2004년 당시 2.6조원 추산 물가상승도 우려=반면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에 따른 비용은 분명하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을 모두 교체해야 하고 모든 기업과 가계, 공공기관에서 회계프로그램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화폐를 인쇄하는 비용, 교환에 소요되는 인건비 등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한은이 2004년 만든 '화폐제도 선진화 개혁안'에 따르면 약 2조60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5년 동안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물가가 상승해 비용은 큰 폭으로 확대됐을 것으로 보인다.

의도치 않은 물가 상승 또한 우려된다. 예컨대 한 잔에 3900원인 커피가 3.9원이 되는 경우 4원으로 올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00원 미만 제품의 경우에는 소수점 둘째자리 가격 상승 효과가 클 수 있다. 670원 짜리 콩나물이 0.67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0.7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화폐환상도 우려된다. 화폐환상이란 임금이나 소득 실질가치는 변화가 없는데도 명목단위가 오르면 임금이나 소득이 올랐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의 경우에는 가격이 낮아지는 반대효과가 작동한다.

예컨대 15만원 짜리 블루투스 스피커가 150원이 되면 실질 가치에는 변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싸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해외여행을 통해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지 않은 현재도 체험할 수 있다.

원/엔 환율은 이날 기준 100엔당 1025원이다. 우수리를 떼면 1대 10 비율이다. 10대 1 리디노미네이션을 간접체험하고 싶다면 일본에 가보면 된다. 실제로 일본 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로부터 "밥 한끼를 동전으로 계산하다보니 돈을 더 헤프게 쓰는 것 같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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