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고조된 긴장감, 고성으로 폭발=이날 오전 9시에 열릴 예정이던 주총은 계획보다 10분 지연돼 시작됐다. 예상보다 현장을 많이 찾은 주주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200여석 마련된 좌석은 주총 시작 30분 전 이미 90% 이상 채워졌다. 늘어나는 사람만큼 긴장감은 고조됐다.
조 회장 일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의결 안건 논의에 들어가기 전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첫 안건인 재무제표 승인 안건 논의에 들어가면서부터 주주들의 고성은 시작됐다. 주주 대리 위임장을 받고 주총에 출석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김남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등이 발언을 시작하면서였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다룬 3호 안건이 나오기까지도 주주 간 고성은 이어졌다. 그러나 우 부사장이 조 회장 관련 안건을 표결하지 않고 결과를 바로 알리자 고성은 폭발했다.
우 부사장은 "조 회장 사내이사 선임 건은 찬성은 64.1%, 반대는 35.9%가 나와 정관 상 의결 정족수인 3분의2를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다"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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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주주들은 즉각 반발했다. 조 회장 이사 연임에 반대하며 위임장을 모았던 시민사회단체 측은 "현장에 온 주주들에게 찬반을 묻고 속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주주는 "공산당처럼 이러는 건 처음봤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 부사장은 "오전에 현장 참석한 표가 모두 찬성을 해도 결과가 뒤집히지 않아 투표를 진행하지 않았다"며 의안 통과를 확정했다.
이후 박남규 사외이사 신규 선임 안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주주들의 고성은 이어졌다. 하지만 우 부사장은 남은 안건을 10분도 안 돼 처리한 뒤 주총을 마무리했다.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박탈이 결정되며 총회가 끝난 뒤 총회 의장인 우기홍 대표이사 부사장이 총회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즉각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말을 아꼈다. 회사에 2만명의 임직원이 다니는 만큼 내부 분위기도 제각각일 것이라고 했다. 또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실패는 인정하면서도 '경영권 박탈' 표현은 경계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과 노동조합 측도 반응을 아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타사의 상황을 쉽게 평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노동조합은 상황 파악을 위한 내부 회의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이 사내이사를 물러나는 것이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홈페이지에 따르면 익명의 일부 노조원들은 게시글을 통해 "세상이 바뀌고 있다" "사필귀정" "노조도 하나로 뭉쳐야 할 때" 라는 반응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