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NO세금, 돈찍어 풀자" 美달군 '현대화폐이론'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한고은 기자 2019.03.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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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 확 풀어라⑦]"적자는 돈 찍어 막으면 된다"는 MMT 급부상…"일본봐라" 옹호 VS "물가·금리 상승 감당 못해" 비판 충돌

편집자주 글로벌 경제에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엄습했다. 우리도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각각 10개월, 8개월 연속 하락했고, 경기 버팀목을 하는 수출마저 넉달 연속 감소했다. 경기 방어를 위해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하지만 걷는 돈이 쓰는 돈보다 많아 사실상 정부가 ‘긴축재정’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게 절실한 이 때 적극적인 재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정부는 아낌없이 돈을 투입해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들은 이를 위해 세금을 더 낼 필요도 없다. 늘어나는 재정적자는 돈을 찍어서 막으면 된다.

이러한 주장의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이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정치·경제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30여년간 잠들었던 이 비주류 이론이 민주당 '정치 샛별'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의 '그린 뉴딜' 정책으로 부활하면서다. 100% 친환경 전환을 표방하는 그린 뉴딜에는 미 정부 1년치 예산보다 많은 6조6000억달러(약 7451조원)가 필요한데 이를 MMT를 기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밖에 2016년부터 MMT를 내세운 버니 샌더스 의원(현 무소속) 등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서 이같은 주장이 커지고 있다.



MMT는 정부 지출은 세수를 뛰어넘어선 안된다는 통념을 깨는 데서 출발한다. 특히 미국 같은 기축통화 국가는 정부가 균형 재정에 집착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화폐나 국채를 발행해 막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고 통화긴축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국민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것이 없어보인다. 공공지출마다 선증세가 수반되지 않아 사실상 세금을 덜내는 효과가 발생해서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2016년 '비주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사례처럼 차기 대선에서 MMT가 또다른 '비주류' 돌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보인다.



경제·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반대 의견이 우세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래리 서머스 전 미 국무장관 등 진보 경제학자들도 MMT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크루그먼 교수는 "재정적자가 늘면 물가상승이 동반되고, 연준은 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다"면서 "재정과 통화 정책의 상충관계를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지난달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지출을 위한 정부의 무한 차입 주장에 대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기축 통화 국가에서 재정적자가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고 일축했다.

미 시카고대학이 40여명의 경제학자들에게 MMT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찬성 의견은 단 한건도 없었다. '매우 반대한다'가 52%, 반대한다가 36%로 나왔다.


MMT를 지지하는 대표학자이자 2016년 버니 샌더스 대선캠프 경제수석으로 일했던 스테파니 켈턴 스토니브룩대 경제학 교수는 "일본은 현재 GDP대비 국가부채가 240%가 넘지만 물가상승률이 2%에 못미치고 장기금리도 제로에 가깝다"면서 "하지만 현재 일본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지 보라"라고 맞대응했다. 미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국가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늘었는데도 여전히 30년물 장기국채 금리가 3%로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근거라는 주장이다. 적자가 늘어도 이를 감당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국내 학계에서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에서는 접목이 어렵다는 분석이 아직은 많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MMT 진영은 정부가 선한 의도를 갖고 화폐를 발행하고, 재정으로 쓰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1920년대 독일과 최근 베네수엘라를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전쟁배상금 지급을 위해 화폐발행량을 급격히 늘리면서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했고, 베네수엘라는 과도한 복지정책에 GDP 대비 재정적자가 20% 수준으로 치솟고 100만%인플레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우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기도 전에 환율에서 문제가 생긴다"며 "국제경제학에서 말하는 비기축통화국의 '원죄'인데,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면 대외부채를 갚기 힘들어진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이론"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적 특성' 때문에 오히려 적용이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있다. 오석태 SG(소시에테제네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금융시장 사람들은 다 MMT의 현실성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며 “핵심은 MMT가 한국에도 적용되느냐인데, 생산성이 높고, 국가의 징세 능력이 뛰어나며, 외화 표시 국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적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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