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北 비핵화'는 후순위…文대통령 손에 달렸다

머니투데이 뉴욕(미국)=이상배 특파원 2019.03.0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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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풀어라" vs "WMD 동결부터"… 트럼프, 내년 대선 앞두고 '北 비핵화 합의' 재시도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첫날인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첫날인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WMD(대량파괴무기) 완전 동결'과 '영변 외 추가 핵시설 폐기'.

지난달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측에 요구한 건 크게 이 2가지였다. 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대가로 5가지 핵심 제재를 풀어주길 원했다. 처음부터 이뤄질 수 없는 합의였다.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은 이 간극이 메워져야만 가능하다. 문제는 더 이상 '북한 비핵화 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 중요한 이유다.



◇"제재 풀어라" vs "WMD 동결부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한 국무부 고위당국자는 최근 필리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마주한 딜레마는 북한이 현 시점에선 WMD를 완전히 동결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라며 "따라서 만약 우리가 제재를 완화한다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십억달러의 돈이 북한의 WMD 개발에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문 서명을 거부한 이유는 이 발언 하나로 설명된다. 북한이 괌 등 미국 영토를 타격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보유 중인 상황에서 제재를 푸는 건 북한에 WMD 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란 얘기다. 설명 트럼프 행정부가 수용하더라도 미국 의회가 동의할 리 없다. 북측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했음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개발 중단 또는 동결을 의미하진 않는다.

북한이 폐기하겠다고 제시한 '영변 핵시설'의 범위를 놓고도 양측의 인식차가 드러났다. 북측은 자신들이 제재 해제의 대가로 '영변지역 모든 핵물질·생산시설의 영구적 완전한 폐기'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내놓으려고 준비한 것의 전체 범위가 여전히 전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며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제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우선적으로 정리돼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나 북미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양자간 협상만으론 타협이 쉽지 않다. 한국의 중재자 역할이 요구되는 건 그래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북미 정상회담 직후 전용기(에어포스원)에 오르자마자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를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남북 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논의 진전 여부가 북미 비핵화 협상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밖에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냉각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옥슨힐 게일로드 내셔널리조트에서 열린 미 보수 진영의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해 “우리는 좋은 관계를 발전시켰고 매우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것이 잘 되면 다른 나라들이 북한에 원조를 제공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 성과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을 경계하면서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 상응 조치로 경제 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2020년 대선 앞두고 '北 비핵화 합의' 다시 시도할듯

일단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른 시일 내 성사되긴 어려워 보인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한 비핵화 협상'은 더 이상 최우선순위가 아니다.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러시아 스캔들' 등 각종 의혹 수사와 과거 측근들의 청문회 △핵심공약인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중국 및 EU(유럽연합)과의 무역협상 △동맹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이 더 중요하다. 특히 '러시아 스캔들' 등 의혹들은 자신에 대한 탄핵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사안이다.

지난달 27∼28일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전후해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트윗들은 대부분 북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거 자신의 개인 변호사였다가 등을 돌린 마이클 코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코언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에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러시아와 유착했다"고 폭로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 관련 보도를 덮기 위해 어중간한 비핵화 합의 대신 협상 결렬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미국의 조야도 대북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이다. 야당인 민주당 주도의 하원은 대북 제재 해제에 반대 입장이고, 국민 대다수의 여론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국내 정치적으로 볼 때 합의 거부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외교적 업적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내년까지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다시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협상은 일종의 부동산거래와 같다"며 "이번엔 합의를 거부했지만, 여전히 목적은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1986년 레이캬비크(아이슬랜드) 정상회담에서 합의에 실패했지만, 결국 이듬해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IRNFT) 협정에 서명했다"며 "미국과 북한 모두 이런 시나리오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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