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의 수장' 호베르투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루마니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무력화된 WTO 상소기구의 현 상황을 언급하며 "지금으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의 상징' WTO가 흔들리고 있다. 1995년 출범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혼란의 중심에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이후 줄곧 WTO를 '재앙'이라고 평가해 왔다. WTO가 무역분쟁과 관련해 미국에 불리한 판정을 내린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도국에 대한 우대혜택을 축소해야 한다며 탈퇴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상태다.
최종심 재판부를 구성하려면 3명의 위원이 필요하다. 즉 지금은 상소기구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있는 셈이다. 올해 12월이면 위원 2명의 임기가 추가로 끝나 1명만 남는다. 이 경우 WTO의 분쟁 해결 시스템은 완전히 마비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기자들과 얘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럽과 무역 협상이 이뤄질 수있다면 긍정적이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긍정적이다"고 말했으며, WTO에 대해서도 “미국을 적절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뭔가 하게 될 것이다"고 비판했다.2018.07.03 /AFP=뉴스1
EU 주도의 개혁 논의도 진행돼 왔다. EU는 지난해말 한국을 비롯해 중국·인도·캐나다·멕시코·스위스 등 11개 WTO 회원국과 함께 상소 기구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이 거부하면서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한국도 WTO의 위기에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처지다. WTO 출범 이후 다자무역체제의 수혜를 많이 본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WTO 체제는 신흥국 한국이 선진국 시장에 쉽게 안착할 수 있게 해 수출 주도 성장을 뒷받침했다. 주요국의 거세진 보호무역주의 공세를 견디기 위해서라도 WTO의 정상화는 중요하다. 한국은 미국발 통상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WTO 분쟁해결절차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미국의 철강·변압기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조치 등 총 4건을 WTO에 제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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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탓에 한국 정부는 WTO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현종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계기로 열린 WTO 비공식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해 "올해는 WTO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다자체제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으로도 회원국 간 논의에 적극 참가하며 빠른 시일 내에 WTO가 개혁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