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받은 ESS 잇따라 화재…원인 못 찾는 정부

머니투데이 세종=권혜민 기자 2019.01.2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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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첫 화재 이후 21회 발생, 여태 화재 원인 규명 못해…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 차질 예상

안전진단 받은 ESS 잇따라 화재…원인 못 찾는 정부


신재생에너지 보급 핵심시설인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ESS)에서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2017년 8월 첫 사고가 보고된 이후로 21번, 올해에만 벌써 4번 불이 났다.

정부는 지난해말 부랴부랴 전국의 ESS 사업장 1300곳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에 들어간 뒤 점검을 받지 않은 시설에 대해선 가동중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안전진단을 받은 ESS에서도 화재가 속출하면서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아직까지 원인도 찾지 못해 그야말로 '속수무책' 상황이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전날(21일) 대성산업가스 울산공장에 설치된 ESS에서 불이 나 건물 1개동이 타 48억4317만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취재 결과 해당 사업장은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달 안전진단을 받은 시설로 확인됐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전력이 필요할 때 방출하는 설비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쓰려면 꼭 필요한 장치다.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ESS 보급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2017년 8월 전북 고창전력시험센터에서 처음으로 ESS 화재가 보고됐다. 이를 시작으로 △경북 경산변전소 △전남 영암 풍력발전소 △전북 군산 태양광발전소 △전남 해남 태양광발전소 △경남 거창 풍력발전소 등 지난해에만 16번 불이 났다.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긴급 대책을 내놨다. 국내 1300개 ESS 사업장 전체에 대해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설비 제조사인 LG화학, 삼성SDI, 한국전력 등은 자체 진단에 들어갔다. 제조사의 자체 진단이 어려운 사업장은 민관합동 특별점검 태스크포스(TF)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현재까지 진행률은 약 70%다.

문제는 이같은 조치 이후에도 화재가 끊이질 않았다는 점이다. 대책 발표 이후인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아세아시멘트 공장, 강원 삼척 태양광발전소에서 불이 났다. 올 들어선 △경남 양산 고려제강 공장 △전남 완도 태양광발전소 △전북 장수 태양광발전소에 이어 이번 울산 사고까지 벌써 4번째 화재다.


특히 6번의 화재 중 제천과 완도 사고를 제외한 4번은 모두 안전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불이 났다. 안전진단을 통과한 시설에서도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태 화재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공공기관에 설치된 ESS에 대해 가동중지 명령을 내렸다. 백화점, 쇼핑몰 등 화재 발생시 인명피해 위험이 큰 다중이용시설 345곳에 대해선 직접 현장을 찾아가 전부 가동을 중단시켰다.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에 대해선 요금감면 연장 등의 형태로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최근 전문가들로 구성된 ESS 사고조사위원회를 출범해 원인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화재 발생 상황과 유사한 상황에서 모의실험을 실시해 원인을 밝힐 계획이다. 결과는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당초 목표 시점이었던 5월보다 앞당겨 3월 전까지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PCS), 배전반 등 복잡한 장치가 많아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는 안전장치 마련이나 사전 검증 절차 없이 ESS 보급에 서둘렀던 정부에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가동중단 사태가 이어질 경우 신재생에너지 보급 사업에도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이 ESS 산업의 '퍼스트무버'이기 때문에 화재 등 문제 발생시 참고할 사례가 없어 원인 규명과 해결이 어렵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기준 마련 등 관련 체계를 전반적으로 뜯어 고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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