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이문세 '더 베스트' 공연. /사진제공=케이문에프앤디
빠른 곡이 나올 때 저마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일어서는 분위기도 넘쳐났지만,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계속 ‘스탠딩’을 고집하던 일부 관객은 다음 곡에서 앞줄이 자리에 앉자 자신도 모르게 앉아야 했다. 더 즐기고 싶어도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쉽지만 ‘좌석 모드’에서 몸을 흔들어야 했다.
지난 4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퀸의 판박이 밴드 ‘더 보헤미안스’ 내한 공연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첫 곡부터 흥이 넘친 무대가 펼쳐졌는데도 누구도 일어서지 않았다. 이 그룹 보컬이 곡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부르기 전 “여러분, 일어나세요”라는 말이 나오자, 관객은 모두 일어나 춤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일부 객석에선 옆 친구에게 “우리 일어날까. 즐기러 왔잖아”하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지난 4일 열린 퀸의 판박이 밴드 '더 보헤미안스' 내한공연. /사진제공=샹그릴라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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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르는 연말연시 공연에 ‘배려’와 ‘즐김’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관객이 적지 않다. 몇 년 전 공연장 풍경과 비교하면 대단한 차이다. 당시에는 앞줄 뒷줄 상관없이 관객이 눈치 보지 않고 즐기고 싶은 만큼 좌석과 스탠딩을 오가며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앞줄이 일어나면 뒷줄도 같이 일어나거나 일어나기 싫을 땐 앞줄의 공연 태도만큼은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는 것이 공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공연기획사 B 본부장은 “록 페스티벌이 넘치고 공연은 ‘함께’라는 문화가 암묵적으로 용인된 시절에는 앞줄, 뒷줄 눈치를 보지 않는 관람 태도가 많았다”며 “요즘 들어 앞줄이 앉으면 뒷줄도 자연스럽게 앉는, 좋은 말로 ‘배려심’이 넘치는 문화가 정착된 것 같다. 하지만 뒤집으면 그만큼 제대로 즐기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층간 소음 갈등, 갑과 을의 권력 문제 등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처로 얻게 된 배려와 존중의 가치가 문화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공연 관계자 C씨는 “예전에는 관객이 뮤지션과 자신과의 온전한 합일을 찾기 위해 개성을 살리는 몸부림이 강했다면 요즘엔 공연을 즐기면서 옆, 뒷좌석 관객 눈치를 보는 문화도 강해졌다”고 했다.
지난 4일 퀸의 판박이 밴드 '더 보헤미안스' 내한공연 모습. /사진제공=샹그릴라엔터테인먼트
4일 ‘더 보헤미안스’ 공연에선 사회자가 나서 “이 두 곡에선 일어나서 같이 즐겨주세요” 같은 말을 사전에 공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이문세 ‘더 베스트’ 무대에서도 관객이 알아서 ‘스탠딩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빠르고 신 나는 곡들을 아예 한 섹션으로 묶어 부르기도 했다.
이문세 공연을 보러 온 관람객 D씨는 "좌석만 있는 경우 상대방을 배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야외 무대처럼 페스티벌 형태가 아닌 경우 아쉬워도 관람에 방해되는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람객 E씨는 “가수가 ‘일어나세요’하면 그제야 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사용허가’를 받은 느낌이 든다”며 “신 나는 곡이 나와도 앞줄이 일어나지 않으면 계속 머뭇거리게 되는 게 요즘 공연 관람 태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