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의 재발견, 옛 밀가루 공장의 재탄생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18.11.21 06:10
글자크기

[피플]서울 민간주도 도시재생 1호 사업 추진, 박상정 아르고스 대표

박상정 아르고스 대표가 대선제분 재생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엄식 기자박상정 아르고스 대표가 대선제분 재생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유엄식 기자


“낡은 공장을 부수고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를 지어 되팔면 단기적으로는 이윤이 많이 남겠죠. 하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더 오랫동안 가치를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답은 보존을 통한 ‘재발견’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민간 주도 도시재생사업을 처음 추진하는 박상정 아르고스 대표(42·사진)의 생각이다. 그는 1936년 준공된 영등포 대선제분 공장을 전시와 공연, 식당과 카페, 상점, 공유오피스 등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이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1만8963㎡ 공장부지에 들어선 사일로(곡물저장고), 제분공장, 목재창고 등 23개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앞서 박 대표가 걸어온 길은 이런 시도와 거리가 있었다.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경제와 금융, 마케팅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15년간 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에서 근무했다.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와 대형 오피스빌딩을 매입한 뒤 가치를 높여 비싼 값에 되파는 일을 했다. 여러 ‘빅딜’을 성사시켜 전문성을 인정받았지만 그럴수록 부동산 개발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깊어졌다. 단기 이익만 좇는 게 성공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그러던 중 2011년 할아버지가 운영한 대선제분 공장의 지방 이전 소식이 들려왔다. 소유주인 대선제분은 당초 매각을 검토했다. 박 대표는 충남 아산으로 공장 이전을 완료한 2013년까지 2년간 회사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대선제분은 임대료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박 대표에게 개발을 일임했다. 아르고스는 이번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지난해 문을 연 회사다.
 
박 대표는 직원들과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꾼 런던의 ‘테이트모던’ 등 해외 도시재생 사례 500여개를 꼼꼼히 살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대선제분 공장의 외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었다. 상전벽해의 근현대사 80년간 온전히 모습을 유지한 보기 드문 시설, 그 자체의 가치와 이야기를 공유하는 취지에서다.
 
비용문제만 고려하면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낫다. 공장 건물을 보존하고 증축과 리모델링을 하는 비용이 같은 크기의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 40~50% 더 든다.
 
노후건물을 기반으로 증축과 리모델링 등 시공이 진행되기 때문에 안전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시공사 감리와 별도로 안전구조 전문가를 영입했다. 그는 “공사에 투입되는 재료부터 건물구조, 준공 이후 이용객 동선까지 안전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제분 공장 재생사업은 일반 부동산 개발사업과 다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스스로 ‘부동산 디벨로퍼(developer)’가 아니라고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이번 재생사업을 성공시켜 대선제분만의 이야기를 살린 콘텐츠사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선제분 공장 앞엔 옛 경성방직 공장을 헐고 재개발한 대형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가 서 있다. 개발과 이익보다 ‘보존’의 가치를 살리고 싶은 박 대표의 꿈이 이제 실현될 시간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