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분양권 모르고 샀는데…" 복불복 구제에 두번 우는 피해자들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이소은 기자 2021.01.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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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분양권 전매 사기, 보호장치가 없다

편집자주 분양권을 사서 입주했던 아파트 주민 40여 가구가 느닷없이 쫓겨날 상황에 처했다. 불법으로 당첨된 분양권이었다는게 이유다. 불법당첨된 분양권인줄 모르고 샀다는걸 증명했지만 시행사는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자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서울에서도 같은 문제로 소송이 진행중이다. 이들을 구제할 법이 발의됐지만 소급입법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이들은 이대로 쫓겨나야 할까, 분양권 전매 피해를 막을 대안은 없을까.

"수억 벌어도 벌금 고작 300만원" 이러니 '불법청약' 계속
불법청약 분양권 전매로 계약취소 위기에 몰린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자이 아파트 입주민들이 선의의 피해자임을 호소하며 단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불법청약 분양권 전매로 계약취소 위기에 몰린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자이 아파트 입주민들이 선의의 피해자임을 호소하며 단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불법청약 원당첨자들은 고작 벌금 300만원 냈다는데, 우리는 집에서 쫓겨날 판입니다. 이게 과연 공정입니까"



최근 불법청약 분양권 전매로 논란이 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자이 입주자 A씨의 말이다. 그는 4년 6개월 전 수억원의 대출을 받아 산 분양권으로 내집 마련 꿈을 이뤘지만, 입주 1년 만에 퇴거 위기에 놓였다. 이 분양권이 뒤늦게 불법청약 당첨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불법청약 전매 피해가 속출하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도 큰 이유다. 적발돼 받게 될 처벌보다 이익이 더 커서 분양권 전매 사기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 줄었는데 더 늘어난 불법청약…전문 브로커 활개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주택 분양 사후검증 강화로 불법청약 적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9년 6월 발표에선 2017~2018년 전국에서 분양한 282개 단지 중 70건의 부정청약 의심 사례를 찾아냈다. 지난해 상반기엔 전국 21개 단지를 조사해 197건의 부정청약 의심 사례를 적발했다.

규제지역 확대로 분양권 전매가 불가능한 단지가 많아져 조사 대상은 줄었지만, 불법행위 적발 건수는 되레 큰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대표적인 불법행위는 위장 전입과 명의 도용을 통한 가점 부풀리기다. 특히 전문 브로커들은 주로 저소득층이나 부양 가족이 많은 가구의 청약 통장을 1000만원 내외로 사들여 임신 진단서, 주민등록등본 위조 등을 통해 청약 가점을 높이는 수법을 쓴다.

부동산 경기가 위축돼 서울에도 미분양이 나왔던 시기엔 이런 사건이 부각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 기관도 검증에 소홀했다. 노후 주택가에 "청약통장 삽니다"란 전단이 버젓이 붙어 있기도 했다.

◇30~40대 내집마련 꿈 악용…불법청약, 분양권 사기 처벌수위 높여야

하지만 수도권은 물론 지방까지 아파트값이 들썩이는 지금은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특히 청약 가점이 낮은 30~40대 수요자들은 분양권 외엔 새아파트를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브로커들은 이런 심리를 악용해 불법 취득한 분양권을 '정상 매물'로 속이고 억대 웃돈을 붙여 팔아 넘겼다. 송파구 헬리오시티, 동작구 아크로리버하임 등 서울 시내 대단지에선 한 브로커가 총책을 맡아 수십억대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분양권 모르고 샀는데…" 복불복 구제에 두번 우는 피해자들
이 브로커는 현재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현행법상 최대 징역형은 3년이다. 3000만원 이상 차익은 3배 벌금을 물리는 조항도 적발 전에 차명으로 돌렸거나 현금화했다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불법행위 가담자와 이들에게 청약통장을 넘긴 원당첨자들은 대부분 300만원 내외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벌금 상한인 3000만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동안 불법청약 원당첨자 처벌이 세지 않았던 이유는 브로커에게 명의를 내어준 사람들 중에 장애인, 기초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정청약에 가담한 장애인이나 기초수급대상자는 공공주택 입주자격이나 각종 사회보장급여 수급권이 박탈될 수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불법청약 적발 시 현재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인데 처벌 수위가 낮다"며 "특히 형사 처벌을 강화해야 재발방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시행사, 조합 등 사업주체가 분양권 전매 선의의 피해자와는 기존 계약을 유지하되, 재분양을 못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선 불법행위에 가담한 브로커와 원당첨자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유엄식 기자

'사고보니 불법 분양권' 나는 쫓겨나는데 옆 아파트는 안 쫓겨난다고?
송파 헬리오시티 현장 전경 / 사진제공=송파 헬리오시티 현장 전경송파 헬리오시티 현장 전경 / 사진제공=송파 헬리오시티 현장 전경
부산의 '마린시티자이' 사태처럼 부정청약으로 당첨된 분양권을 사들인 매수인 모두가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관련 법은 계약취소 여부를 조합 및 시행사의 재량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헬리오시티' 매수인들은 조합과의 논의 끝에 입주에 성공했으나 '아크로리버하임' 매수인들은 계약을 취소 당한 채 여전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조합을 잘 만나면 구제를 받고 잘못 만나면 집에서 쫓겨나는 형국이다.

◇헬리오시티는 '구제', 아크로리버하임은 '나가'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2018년 부정당첨, 불법전매 등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 취득한 사례를 대거 적발하고 '주택법 위반에 따른 주택공급계약 취소 공문'을 보냈다. 전국 257건이 적발됐으며 서울에서도 아크로리버하임 5건을 비롯해 헬리오시티 6건, 보라매SK뷰 11건 등이 적발돼 계약취소 통보를 받았다.

시행사로부터 계약취소를 통보받은 분양권 매수자들은 결국 2019년 집단소송에 들어갔다. 최초당첨자의 부정 당첨 사실을 모른 채 적법한 절차를 통해 분양권을 매입했는데 계약취소를 강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소송은 2년 가량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 와중에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전체 시행사 중 일부가 선의의 피해자인 매수자들을 구제해주기로 결정한 것. 처음 계약취소를 통보한 국토부 역시 저항이 심해지자 시행사 측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제해주라'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현재 헬리오시티를 비롯해서 다산 힐스테이트, 미사강변신안인스빌, 미사호반 써밋플레이스, 광교 중흥S클래스 등 12개 단지 시행사 및 조합이 선의의 매수자를 보호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아크로리버하임, 일과 자이푸르지오, 시흥장현 모아미래도 에듀포레 등은 계약취소를 그대로 강행한 상태다.

아크로리버하임 부정청약 분양권을 매수했다가 돌연 계약 취소를 당한 한 매수인은 "헬리오시티 분양권 매수자들은 그대로 입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헬리오시티는 되고 아크로리버하임은 안되는거냐"며 "선의의 피해자였던 점은 똑같은데 두가지 잣대를 들이대니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주택법, 계약취소 여부 시행사 재량에 맡겨…복불복(福不福)이 된 피해자 구제

"불법 분양권 모르고 샀는데…" 복불복 구제에 두번 우는 피해자들
고무줄 잣대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주택법 65조 2항 때문이다. 공급질서 교란 금지를 다룬 이 조항을 보면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사업주체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는 그 주택공급을 신청할 수 있는 지위를 무효로 하거나 이미 체결된 주택의 공급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돼있다.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한유의 문성준 변호사는 "'취소 할 수 있다'가 재량에 맡긴다는 의미여서 국토부와 사업주체가 취소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형태"라며 "재량에 맡기다 보니 몇몇 사업주체는 이익을 위해 계약취소를 강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익이라는 것은 시행사가 계약취소 물량을 현재 시세대로 분양하면서 누리는 시세차익을 의미한다. 최근 국토부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불법청약에 따른 계약취소 후 나온 재분양 물량 가격을 원분양가 수준에서 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달 초 '불법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주택을 매수할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소명하면 해당 주택을 계속 소유 및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소급입법하지 않으면 이미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입주자들을 구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 변호사는 "주택법에 선의의 제3자 보호 규정을 두지 않은 이유는 불법 분양권 시장을 방지하겠다는 공익적인 목적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의의 매수인이 보고 그 이익은 시행사가 취한다"며 "이는 공익을 핑계로 국가의 잘못을 매수인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소은 기자

'분양권 공시제' 2년간 논의만 하다 없던일로…정부는 책임없나
불법청약 분양권 사기 피해로 퇴거 위기에 놓인 해운대 마린시티자이 입주민들이 27일 오후 국회 앞에서 법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마린자이 선의의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불법청약 분양권 사기 피해로 퇴거 위기에 놓인 해운대 마린시티자이 입주민들이 27일 오후 국회 앞에서 법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마린자이 선의의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정부도 분양권 전매 사기 피해가 늘어날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2018년 9·13 대책에서 '분양권 정보 공시제' 도입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정 청약이 의심되거나 수사기관에 적발돼 기소된 경우 해당 분양권을 공표해서 더 이상 선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입주 전까지 여러 번 거래될 수 있는 분양권 특성도 고려한 것이다.

◇분양권 공시제, 피의사실공표죄 우려로 보류

하지만 분양권 공시제는 관계 기관들이 2년 여간 논의한 끝에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시하면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도입을 보류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정부는 사전 예방보다 사후 검증에 주력하고 있다.

분양권 전매 피해자들은 실적 위주의 '뒷북 행정'에 불만을 토로한다. 조사 결과만 발표하고 이후에 발생되는 일에 대해선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동작구 아크로리버하임 분양권을 샀다가 계약취소 통보를 받은 A씨는 "국토부가 불법청약 분양권 공식발표 전에 꼼꼼한 검증을 거쳐 선의의 피해자는 가려내고 이들은 계약이 유지되도록 구제 조치를 했어야 했다"며 "조사 실적만 내세웠고 억울하게 내집마련 기회를 박탈당한 피해자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사전에 선의의 피해자를 가려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불법청약 의심 사례를 찾아내도 해당 분양권 매수자가 정말 선의의 피해자인지 여부는 금융거래 조사 등을 통해 수사기관이 확인해 줄 수밖에 없다"며 "이를 통해 선의의 피해자임이 확인되면 계약유지를 적극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분양권 모르고 샀는데…" 복불복 구제에 두번 우는 피해자들
◇피해구제 한계…실질적 계약유지·취소 권한 부여해야

부산 '마린시티자이'에서 분양권 전매 사기 피해자가 대거 발생하자 국토부는 시행사에 선의의 피해자는 계약해지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현재는 조합, 시행사 등 사업주체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피해자들을 구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실제로 국토부는 마린시티자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담당 인력을 수차례 파견하고, 계약유지 권고 공문을 보냈지만 시행사 측은 계약취소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해운대구청이 계약을 해지하고 재분양에 나서면 승인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시행사는 요지부동이다.

마린시티자이 시행사 '성연'은 "공급계약을 취소하면 일부 세대가 선의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주택법에 따라 계약취소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성연은 "정부가 주택법 취지를 감안하지 않고 민원 해결에 몰두해 책임을 시행사에 떠넘기고 있다"며 "미봉을 위한 책임회피성 공문을 보낼 게 아니라 문제가 있으면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계약을 취소한 조합도 재산상 손실을 보고 있다. 서울 아크로리버하임은 계약 취소된 시세 20억원에 달하는 아파트 5채를 26개월째 공실로 놔두고 있다. 이성식 흑석7구역(아크로리버하임) 조합장은 "5채에 대한 종부세만 이미 9000만원을 냈다"며 "올해부터 법인 종부세율이 최고 6%로 오르면 거의 9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해 조합원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신속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수사기관 검증을 통해 분양권 전매 '선의의 피해자'가 입증된 경우 국토부가 계약유지 또는 계약취소 불허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유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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