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군인에게 충성 요구하려면

머니투데이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2018.08.09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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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군인에게 충성 요구하려면


북미관계가 양국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협상과 공존의 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후 가장 먼저 전한 화해와 타협의 몸짓 중 하나가 미군 유해 송환이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맺은 지 65주년이 된 날 55구의 유해가 북한에서 미국으로 송환됐다. 새로운 관계의 첫 마당을 그 흔한 경제협력이나 민간교류 같은 의제로 채우지 않고 유해 송환이라는 어떻게 보면 거의 다 잊힐 만한 그 먼 과거의 사건으로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그 사회를 위해 공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가령 우리의 처지는 군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경찰과 소방관을 포함해서 군인이 하는 역할은 일반인들이 수행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하는 일은 공익적 특성이 매우 강해 한 사회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이러한 역할은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의 사적 욕구를 충족하는 의미보다 국가라는 공적 차원의 요구를 수행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사람은 이러한 공적 역할을 힘들고 고된 것으로 여김으로써 가능하면 그것을 기피하고자 한다. 대신 자신들의 개인적 욕구나 선호를 더 중요시해 그것을 우선적으로 충족하고자 한다. 이처럼 사회적 요구와 개인적 선호 사이의 엇박자 속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그들의 노고가 제대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군복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나아질 뿐만 아니라 군인들 자신도 높은 자부심 속에 주어진 역할을 신명나게 수행할 수 있다.

군인들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희생도 감수한다는 것은 곧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군인의 특성 중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을 그들의 명예라고 생각한다. 이때 군인이 명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군인 스스로 그러한 삶을 명예라고 생각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 역시 헌신하고 봉사하는 군인들의 삶을 높이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사회가 군인들의 희생과 봉사를 인정할 때 그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명분을 갖게 되고 의미도 얻는다.



군인의 인식표는 2개인데, 하나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 자를 위한 것이다. 전사자의 신분을 알기 위한 용도로 하나가 쓰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 전사자의 죽음을 확인하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군인의 정체성은 바로 이 인식표를 걸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결국 군인이 입은 전투복과 목에 건 인식표가 그들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군인들의 목에서부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사자들의 나머지 하나의 인식표를 챙기는 것은 단지 그들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에 대한 각별한 예우와 보상을 통해 그들의 죽음을 명예롭게 기리고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전사자나 그 유족만을 위한 것도 결코 아니다. 살아남은 부대원들이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서 싸울 각오와 의미를 다지도록 하는데 필요한 요소다.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사회가 군인들에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것을 요구하려면 그들의 엄청난 희생과 충성을 칭송하며 소중히 기리고 있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그들의 죽음은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미군 유해 송환은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가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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