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인듯 '가축'아닌 '가족'같은 '개'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2018.05.2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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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Law&Life-'개고기' 딜레마 ①] "동물보호" vs "사육농가 생존권"…답 없는 전쟁에 낀 개들

그래픽=이지혜 기자그래픽=이지혜 기자


"개 사육 농가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개때가 출현했다. 육견 사육 농민 300여명이 정부의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가축분뇨법) 개정안에 항의하며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철창에 가둔 개들을 트럭에 싣고 왔다. 당초 개들을 국회에 풀어놓을 계획까지 세웠지만 실행은 하지 못했다. 이들은 맞불 집회를 연 동물권단체 회원들과 마찰을 빚었고, 60대 참가자는 음독을 시도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들이 겉으로 내세운 문제는 가축분뇨법 개정안이지만,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개고기의 실질적인 합법화다. '개고기'를 둘러싼 논란은 수십년째 복날이 가까워지는 여름이면 되풀이되곤 한다. 반려동물인 개를 음식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관리 사각지대' 놓인 개

'개'들이 거리로 나온 건 무허가 축사의 양성화를 골자로 하는 가축분뇨법 개정안 때문이다. 개정안은 축사에 가축 분뇨 시설을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무허가 축사로 규정해 사용 중지나 폐쇄 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축사 규모 등에 따라 시행 유예기간을 차등 부여했다.



개정안은 지난 3월24일부터 시행됐다. 다만 정부는 당장 시설을 갖추기 어렵다는 농가의 민원을 받아들여 시행을 연기하기로 했다. 소, 돼지 등을 기르는 축사들에게 '적법화 이행 계획서'를 받고 준비 시간을 더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유예 대상에 개 축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가축 분뇨 시설을 갖추지 않은 개 축사는 사용 중지 또는 폐쇄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개 농장주들이 반발한 이유다.

주무부처인 환경부 관계자는 "기존 축사에 행정처분을 바로 적용하기 어려워 이미 최소 3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줬는데도 가축 질병 등 각종 사유로 시행이 어려웠다는 농가의 의견이 있어 추가 이행기간을 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개는 식육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고, 개 사육 시설은 축산업으로 등록도 안 되는 등 기존 법으로 관리가 안 되는 상황이어서 당장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빠른 시일에 시설을 적법화하는게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바로 시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개 농장은 지난 3월24일부터 시행된 가축분뇨법 개정안에 행정 처분의 대상이 됐다.


현행법상 개는 '가축'이면서 '가축'이 아니다. 축산법상 개는 '가축'에 해당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축산법상 개는 가축은 맞는데, 축산업 등록 제외 가축에 해당한다"며 "축산법상 개 농장은 축산업을 위한 허가나 등록 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축'이 '식품'이 되기 위해서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축산물 위생관리법이 정의하는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에 개는 포함되지 않는다. '개고기'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현행 법상 개는 '기르는 가축'이지만 '먹는 가축'은 아닌 셈이다.

'가축'인듯 '가축'아닌 '가족'같은 '개'
◇'기르는 가축'이지만 '먹는 가축'은 아닌 개

현실에서 '개고기'는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개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가 이처럼 애매한 위치에 있게 된 것은 결국 개고기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 때문이다. 1975년 국회는 법 개정을 통해 개도 도살 또는 식육시 검사를 하도록 했지만, 동물보호단체 등의 반대에 결국 철회됐다.

국제행사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논란은 더욱 치열해졌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개고기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홍콩 등은 개 식용을 금지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면 육견 단체들은 "식육견과 애완견은 다르다"며 "식육견을 합법화해 제대로 된 관리 체계 아래 놓자"고 주장한다.

개고기 논란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전기충격으로 개를 도살하는 방법(전살법)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해당해 동물학대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이 벌어졌다. 1·2심 법원은 "개가 식용으로 이용되는 국내 상황에서 전살법으로 개를 도축한 것은 학대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전살법은 법이 정해놓은 가축 도살 방법의 하나지만, 개 식용과 도축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법적으로 개를 가축에서 빼자니 당장 개 사육 농가는 모두 불법이 돼 생존권 문제가 걸리고, 식용 가축에 포함할 경우 한국은 합법적인 개고기 식용 국가가 된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수십년이 흘렀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동물보호단체들은 개 도축 시설 등을 찾아 동물학대로 신고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제대로 없어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되지 않으면 갈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쟁과 사회적 비용 낭비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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