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은 왜 ‘레드벨벳’ 매력에 빠졌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4.0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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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 노래를 통해 알아본 ‘김 위원장의 파격 변화’…재즈 같은 구성의 음악에 관심↑ 서방 문화 이해 폭 넓히는 듯

1일 평양 공연을 마친 레드벨벳.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1일 평양 공연을 마친 레드벨벳.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우리 예술단 공연에서 가장 큰 화제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레드벨벳’에 대한 관심이었다. 김 위원장은 공연이 끝난 뒤 “내가 레드벨벳을 보러 올지 관심이 많았다”는 말로 케이팝 스타에 대한 애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평양 공연에 참석한 우리 예술단 중 가장 이해가 안 가고 느닷없는 팀이 레드벨벳이었다. 그룹명과 곡명 ‘빨간 맛’에서부터 ‘적화’(赤化) 냄새가 짙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레드벨벳 무대를 보기 위해 일정을 조정해 3일 무대 대신 1일 무대를 급하게 찾았다.

레드벨벳을 향한 김 위원장의 애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는 ‘친근감과 동일화’이다. 남측 그룹의 ‘레드’적 상징이 조롱이나 유희가 아닌 북측과 다르지 않은 일종의 가족주의적 유대로 해석할 가능성이 컸다는 얘기다. 우리는 평양에 가기 전부터 우려했던 ‘레드’에 대한 경계심을 북측은 이미 푼 셈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부터 남측에 대해 고무적 분위기를 선사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시작으로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로 ‘파격적 제안’과 ‘화해 무대’ 조성에 앞장섰다.

남측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의 최우선 과제는 ‘포용’이다. 남은 파랑, 북은 빨강 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두 색깔이 언제든 혼용되고 섞이며 하나로 향할 수 있다는 포용에 기반한 이해다. 김 위원장은 레드벨벳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함으로써 나름의 포용적 태도를 과시했다.

두 번째 애정의 고리는 레드벨벳의 노래를 통한 미국 등 서방 세계의 문화를 깊이 해석하려는 의도와 연결된다. 이른바 ‘문화 충돌의 장벽 없애기’인 셈이다.


레드벨벳이 이날 무대에서 부른 ‘빨간 맛’과 ‘배드 보이’는 북측이 그간 선호해온 전통적인 남측 가요와 전적으로 배치되는 곡조다.

조용필-최진희-이선희 라인으로 이어지는 곡들 대부분이 4비트, 8비트 리듬 위에서 기승전결 구조와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친근한 멜로디 전개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레드벨벳의 음악은 16비트에 리듬이 까다롭고 박자의 구분이 어려운 데다, 멜로디 역시 흔히 듣는 ‘감성적 패턴’과 거리가 멀다. 남측도 이런 곡조에 익숙해지기까지 지난 10년 이상 비슷한 곡들(이를테면 R&B, 솔, 재즈, 힙합)을 나름대로 ‘학습’해야 했다.

특히 레드벨벳의 ‘배드 보이’는 4박자 중 2박, 4박에 강세가 있는 재즈 리듬을 차용해 1박, 3박에 강세가 있는 전통 가요를 듣던 북측 관객에겐 험로로 여겨진다.

김 위원장이 이런 어렵고 복잡한 노래를 듣겠다고 한 것은 이 노래 자체가 주는 매력보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런 패턴의 노래를 레드벨벳을 통해 이해하고 학습해 서방 세계 문화의 장벽을 허물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이다.

당장 김 위원장은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그 회담의 시작은 정치나 국방 문제보다 문화적인 이해를 통한 유대감을 획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남측 정부 인사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공연이 끝난 뒤 레드벨벳의 노래와 가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 북측이 오랫동안 ‘국민송’처럼 여긴 남측 노래와의 긴 인연을 넘어 새로운 돌파구로 아이돌 그룹의 난해한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화합을 위한 파격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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