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평양 공연을 마친 레드벨벳.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평양 공연에 참석한 우리 예술단 중 가장 이해가 안 가고 느닷없는 팀이 레드벨벳이었다. 그룹명과 곡명 ‘빨간 맛’에서부터 ‘적화’(赤化) 냄새가 짙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레드벨벳을 향한 김 위원장의 애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는 ‘친근감과 동일화’이다. 남측 그룹의 ‘레드’적 상징이 조롱이나 유희가 아닌 북측과 다르지 않은 일종의 가족주의적 유대로 해석할 가능성이 컸다는 얘기다. 우리는 평양에 가기 전부터 우려했던 ‘레드’에 대한 경계심을 북측은 이미 푼 셈이다.
남측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의 최우선 과제는 ‘포용’이다. 남은 파랑, 북은 빨강 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두 색깔이 언제든 혼용되고 섞이며 하나로 향할 수 있다는 포용에 기반한 이해다. 김 위원장은 레드벨벳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함으로써 나름의 포용적 태도를 과시했다.
두 번째 애정의 고리는 레드벨벳의 노래를 통한 미국 등 서방 세계의 문화를 깊이 해석하려는 의도와 연결된다. 이른바 ‘문화 충돌의 장벽 없애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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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이 이날 무대에서 부른 ‘빨간 맛’과 ‘배드 보이’는 북측이 그간 선호해온 전통적인 남측 가요와 전적으로 배치되는 곡조다.
조용필-최진희-이선희 라인으로 이어지는 곡들 대부분이 4비트, 8비트 리듬 위에서 기승전결 구조와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친근한 멜로디 전개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레드벨벳의 음악은 16비트에 리듬이 까다롭고 박자의 구분이 어려운 데다, 멜로디 역시 흔히 듣는 ‘감성적 패턴’과 거리가 멀다. 남측도 이런 곡조에 익숙해지기까지 지난 10년 이상 비슷한 곡들(이를테면 R&B, 솔, 재즈, 힙합)을 나름대로 ‘학습’해야 했다.
특히 레드벨벳의 ‘배드 보이’는 4박자 중 2박, 4박에 강세가 있는 재즈 리듬을 차용해 1박, 3박에 강세가 있는 전통 가요를 듣던 북측 관객에겐 험로로 여겨진다.
김 위원장이 이런 어렵고 복잡한 노래를 듣겠다고 한 것은 이 노래 자체가 주는 매력보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런 패턴의 노래를 레드벨벳을 통해 이해하고 학습해 서방 세계 문화의 장벽을 허물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이다.
당장 김 위원장은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그 회담의 시작은 정치나 국방 문제보다 문화적인 이해를 통한 유대감을 획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남측 정부 인사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공연이 끝난 뒤 레드벨벳의 노래와 가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 북측이 오랫동안 ‘국민송’처럼 여긴 남측 노래와의 긴 인연을 넘어 새로운 돌파구로 아이돌 그룹의 난해한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화합을 위한 파격 행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