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정농단' 시작부터 구형까지 19개월의 기록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8.02.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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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대응가치 없다" 무시하다 "검찰·특검 조사 수용" 약속…이후 대면조사 거부하고 재판도 '보이콧'

'박근혜 국정농단' 시작부터 구형까지 19개월의 기록


박근혜 전 대통령(66)의 1심 재판이 27일 마무리됐다. 지난해 4월17일 구속기소 후 약 10개월 만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유기징역 중 최고형인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2016년 7월 미르재단 의혹 제기로 시작된 이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 됐다. 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형사법정에 선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이 사건에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국정농단 사건은 2016년 7월 미르재단이 대기업 자금 486억원을 끌어모으는 데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이 개입했다는 언론 보도로 불거졌다. 이를 시작으로 미르재단과 더불어 K스포츠재단에 대한 언론 취재가 본격화됐다. 박근혜정부 청와대는 "해명하고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며 한동안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JTBC가 최순실씨(62)의 태블릿PC를 입수해 10월24일 보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기기에서 드레스덴 연설문 등 청와대 기밀자료가 발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됐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JTBC 보도 다음날 1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씨의 존재를 인정했다.

1차 대국민담화가 있고 이틀 뒤 검찰은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필두로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박 전 대통령은 2차,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검찰 조사를 수용하고 특별검사 수사 개시에 동의하며, 자신의 거취는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그 사이 검찰은 최씨를 긴급체포해 구속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통했던 안 전 수석과 '문고리권력'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49)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그 다음 수사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맡았다. 12월1일 임명장을 받은 박 특검은 20일 간의 준비기간을 갖고 공식수사에 돌입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수사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다.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결국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을 기소한 뒤 다시 바통을 검찰에 넘겨야 했다.

국회 상황도 긴박했다. 12월3일 당시 야3당과 무소속까지 합쳐 171명의 의원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동발의했다. 다음날 표결이 이뤄졌고 재적 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여해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서는 헌법재판소와 박 전 대통령에게 송부됐고 박 전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가 됐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게 탄핵심판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무더기로 증인을 신청하는 식으로 '지연전략'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었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의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탄핵 결정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에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특검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은 곧바로 박 전 대통령 조사에 나섰다. 박 전 대통령도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거부할 수만은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3월21일 검찰에 소환돼 22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검찰은 엿새 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영장실질심사는 3월30일로 잡혔다. 박 전 대통령은 예정대로 법원에 출석해 약 8시간40분 동안 심사를 받았다. 영장심사로는 역대 최장기록이었다.

법원은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박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에 즉시 수감됐다. 그러나 검찰의 출석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이 구치소로 '출장조사'를 나가야 했다. 검찰은 5회에 걸친 출장조사 끝에 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뉴스1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뉴스1
박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총 18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대기업들로 하여금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774억원의 자금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 △현대자동차·KT 등으로 하여금 최씨 지인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하거나 최씨 측 인사를 고용하도록 강요한 혐의 △삼성그룹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22)에 대한 승마지원 명목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롯데·SK그룹으로부터 청탁 대가 명목의 뇌물을 수수하거나 요구한 혐의 등 주요 부분이 최씨와 공범관계로 엮였다. 장기간의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지난해 10월13일 변곡점을 맞았다. 구속기간 만료를 3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날 재판에서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구속기간을 4월16일까지 연장됐다.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직접 발언권을 얻고 이 결정을 비난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후 변호인단 전원을 사임시킨 뒤 모든 재판에 불출석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을 강제로 재판에 출석시키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국선 변호인단을 선임해주고 궐석 재판을 결정했다.



그 사이 박 전 대통령의 공범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잇따라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중에서도 최씨의 형량이 가장 무거웠다. 최씨는 1심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 최씨의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헌법상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과 지위를 사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책임이 있다"며 두 사람 모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형량이 징역 20년 이상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였고 블랙리스트(문화계 지원배제명단) 사건 등 별도의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뇌물범죄에서 공무원이 민간인보다 훨씬 엄하게 처벌받는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이 최씨보다 중할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기일은 빨라야 3주 뒤로 잡힐 것으로 보인다. 일반 사건은 보통 결심공판을 열고 2~3주 후면 선고가 나왔지만 국정농단 사건은 3~4주가 걸렸다. 사건이 복잡하고 기록이 방대해 선고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2차 구속만기일인 4월16일을 넘기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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