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자유인' 이재용…선고 순간 미동도 없어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8.02.0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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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선고공판 시작 전부터 긴장한 기색 역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스1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스1


"피고인 이재용을 징역 2년6월에 처한다. 다만 형의 집행을 4년 간 유예한다."

5일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의 집행유예 선고와 함께 이 부회장은 자유인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2월17일 구속영장이 발부로 수감생활을 시작한 지 약 1년 만이다. 이 부회장의 얼굴은 귀까지 상기됐다.

재판장인 정형식 부장판사가 "무죄 부분의 공시를 원하느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제대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정 부장판사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라고 되묻자 이 부회장은 변호인의 설명을 듣더니 공시를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다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5일 삼성그룹 뇌물 사건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따라 이 부회장은 구속수감 1년 만에 석방됐다.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던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선고공판 내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선고공판 시작 시간보다 약 13분 이른 오후 1시47분쯤 검은색 정장에 흰색 셔츠를 입고 입정했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불구속 상태였던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가 미리 들어와 있었지만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긴장한 듯 굳은 표정으로 이따금씩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시거나 자세를 고쳐앉았다. 공판 시작 10여분을 남겨뒀을 때쯤엔 재판부가 앉을 법대를 묵묵히 바라왔다.



재판부는 오후 2시1분쯤 입정했고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은 어깨까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정 부장판사가 "기소된 전체적인 구도를 말씀드리겠다"며 판결 선고를 시작하자 이 부회장은 입술이 바짝 마른 듯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최 전 부회장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이날 판결에서 정 부장판사는 1심의 핵심 법리였던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을 부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고, 3회에 걸친 독대 자리에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제3자뇌물죄가 적용됐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 후원 부분은 모두 무죄 판단을 받았다. 허리를 곧게 편 이 부회장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1심에서 72억원으로 인정됐던 승마지원 관련 단순 뇌물액수도 36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삼성이 살시도 등 말 소유권을 최씨에게 넘겨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필 구입대금 36억원은 뇌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다만 정유라씨(22)가 말을 사실상 공짜로 이용한 것은 사실이라며 액수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부분도 뇌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판결 선고가 중반을 넘기자 이 부회장은 입에 립밤을 바르기 시작했다. 최 전 부회장도 손으로 턱을 문지르거나 입술을 뜯는 등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 부장판사가 코어스포츠로 흘러간 승마지원금에 대해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대목에서 이 부회장은 다시 립밤을 발랐다.

마지막으로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최씨 모녀의 존재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 것은 위증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이 부회장은 고개를 잠시 푹 숙였다. 그리고 정 부장판사가 "이 같은 유·무죄 판단에 따라 형을 정했다"며 양형이유 설명에 들어가자 입술에 침을 바르고 안경을 고쳐썼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 원심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판단했다. 이 법원은 이와 다르게 판단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뇌물로 인정된 금액도 결코 적지는 않지만 특검의 공소사실 상당 부분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들의 승마지원 상당 부분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피고인들을 일으켜세우고 전원에 대해 유죄 판결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부회장은 선고 후 잠시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어 벌건 얼굴로 변호인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구속피고인 대기실로 퇴장했다. 방청객들은 법정을 나서면서 "뇌물 액수가 완전 줄었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로 보이는 일부 방청객들은 법정 밖에서 "무죄, 무죄입니다", "만세, 만세입니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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