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노동이사제는 '찻잔 속 태풍'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7.11.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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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노동이사제 찬성 파장]노조조직률 낮은 포스코, 대표성 부족한 KT 등 원시불능 지적

민간기업 노동이사제는 '찻잔 속 태풍'


공기업과 금융계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경영 참여 화두를 불러일으킨 '노동이사제'가 시장과 경제계 전체적으로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파악된다.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 사항으로 이를 내세우고 실제 적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일부 공기업을 제외하곤 제도를 강제할 수단과 명분이 미약해서다.



19일 경제계에 따르면 민간기업 가운데 정부가 노동이사제를 채택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상으로는 포스코와 KT (34,750원 ▲150 +0.43%)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현재는 민간 기업이지만 2000년대 초까지 공기업이었고 아직까지도 최고의사결정자(CEO) 선임 과정 등에서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포스코는 노동이사제와 관련해 이른바 '원시적 불능(原始的 不能)'을 거론한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현재로선 처음부터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의미다.



지난 분기 말 기준 포스코의 노조원 가입자 수는 2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에 생겨난 포스코 노조는 노조연맹체인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속하지 않은 자생 독립 조직이다.

철강재 제조사인 포스코의 특성상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할 수 있지만 역사가 그보다 앞서고 조직원이 미미해 자체 활동에 머물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지만 기업 문화 때문인지 참여율이 상당히 저조하다"며 "1만6700명의 임직원 가운데 노조원이 20여명에 불과해 이들 중에서 대표성을 가진 이사회 참여자를 선발하는 게 마땅치 않다"고 설명했다.

민간에서 포스코와 같은 조건에 있는 기업으로는 노조 조직률이 낮은 삼성 등 다수의 그룹 소속사들이 거론된다.


통신기업 KT 역시 포스코와는 다소 사정이 다르지만 결론적으로는 도입 가능성이 높지 않다. KT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으로 지분 11.20%(2017년 3분기 말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최근 KB국민은행 사례에서처럼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도입을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KT 일반 노조는 2004년부터 3년간 주주총회에서 독자적으로 사외이사 후보를 낸 경험을 갖고 있다. 추천 인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이사회 진출을 다시 추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복수노조 도입에 따라 새로 설립된 KT 새 노조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KT는 이런 주장이 다수가 아닌 일부 주장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일단 1만8000여명의 조직원(전체 임직원 2만3000여명)을 가진 기존 노조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2004~2006년과는 현재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 실제 기존 노조가 강성인 민주노총 산하에 있다가 2009년 투표를 통해 탈퇴했고 현재 한국노총 소속인 상태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원하는 새 노조 가입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민간기업들이 복수노조 도입에 따라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려고 해도 노조 간 알력 다툼과 대표성 문제로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일단 선수 자체를 선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재계는 정부와 여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선 노동이사제 도입이 주주권익보호 측면에서 다수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와 같은 성향의 국민연금이 제도에 찬성하고 있지만 실제 각 기업들에 대한 연금 운용본부의 지분율은 과반에 훨씬 못 미치고, 많아야 10%대 초반에 머물고 있어서다.

경영계는 노동이사제 반대입장이 분명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5월 서울시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자 "독일식 노동이사제는 기업들이 2차 대전에 동원됐던 역사적 반성에 따른 것으로 지금은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제도로 외면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자유시장 체제인 우리나라에 도입하면 근로자이사와 경영진 의견대립으로 이사회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결국 그 손해는 주주들이 부담하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실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해선 상장기업의 경우 각 기업의 대주주 외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찬성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1992년 주식시장 개방 이후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30%를 넘어섰는데 이들의 경우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보단 주주이익에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향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정부가 대주주인 공기업이나 일부 금융사를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적용되기가 어렵다"며 "이 제도는 현실 경제에서 주요하게 기능하기보다는 정치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 도구)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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