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데로 이사할까"…고층아파트 주민 '지진공포'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17.11.17 06:35
글자크기

주택·저층건물 지진안전에 더 취약…'내진설계' 사각지대

역대 두번째 규모인 5.4의 지진 발생 이틀째인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한 아파트 앞에서 경찰이 붕괴위험으로 출입 통제되고 있다. /사진=뉴스1역대 두번째 규모인 5.4의 지진 발생 이틀째인 16일 오전 경북 포항시 한 아파트 앞에서 경찰이 붕괴위험으로 출입 통제되고 있다. /사진=뉴스1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15층짜리 아파트 14층에 사는 주부 정모씨(57)는 계획에 없던 이사를 고민하게 됐다.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이후 불안감이 커져서다. 정씨는 "TV 화면이 지직거리고 가구가 크게 흔들리니 머리가 쭈뼛 섰다"며 "고층 아파트라 진동이 더 잘 느껴진 것 같아서 주택이나 저층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반도 사상 두 번째로 강력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해 각종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13층에 거주하는 양모씨(39)는 "지진이 발생하자 집이 흔들리면서 열어놨던 세탁기 문이 닫혀 매우 놀랐다"며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승강기를 타기도 겁이 나서 집에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오산시의 한 아파트 16층에 거주하는 강모씨(28)는 "고층 아파트처럼 큰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진동을 더 잘 느낀 것 같다"며 "가족끼리 아파트 저층으로 이사하자는 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층 건물의 특성상 저층보다 고층 건물에 있는 사람이 지진 공포를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땅에서 더 멀리 떨어졌을 뿐 아니라 지진이 나면 저층 건물보다 고층 건물이 더 크게 흔들려서다. 이로 인해 고층 건물이 지진 안전에 더 취약하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내진설계율의 경우 저층 건물 및 주택의 내진 설계율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시 내 저층 주택 39만5668동 중 내진설계 대상은 12만6116동으로 집계됐다. 이 중 내진 성능이 확보된 건축물은 1만5954동으로 전체의 12.4%에 불과하다. 내진설계가 필요한 주택 10곳 중 9곳이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단독주택의 경우 내진설계 대상 8만255동 중 내진 성능이 확보된 건물은 1만270동(12.8%)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건축물 내진설계 의무화가 적용된 시기는 1988년이다. 당시 '6층 이상 또는 면적 10만㎡ 이상 건축물을 내진설계 하도록 했다.

국토교통부는 2005년 이후 내진설계 적용 대상을 '3층 이상 또는 1000㎡ 이상 건축물'로 정했다가 지난 2월부터 '2층 또는 200㎡ 이상 건물'로 확대하는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국내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은 점차 확대됐지만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내진 성능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2005년 전에 세워진 6층 미만 건물도 마찬가지다.

반면 고층 아파트는 규모 6~6.5 지진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설계 시 15일 발생한 지진 수준 이상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고층 건물이 저층 건물보다 지진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한다. 고층 건물이 더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지만, 짧게 여러 번 흔들리는 저층 건물보다는 천천히 느리게 흔들리는 고층 건물이 구조에 영향을 덜 받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승강기, 가스 배관, 천장재, 외벽 등 비구조재도 내진 설계돼 있어야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