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죽었다…사라진 마인드의 행방은?

머니투데이 김초엽 2017.10.0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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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과학문학공모전 중단편소설] 대상 '관내분실' <3회>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br>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휴가 첫날 지민은 병원에 갔다. 의사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청진기를 이용해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태아의 심장은 임산부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뛴다. 그만큼 생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일까. 의사는 조심스레 미소를 지으며 심장박동수도 정상적이고, 태아도 건강한 상태라는 말을 건넸다. 지민의 굳은 표정을 본 카운터의 간호사는 그녀가 임신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요 몇 주 동안 자주 얼굴을 봐서 꽤 익숙해진 간호사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많이 긴장되죠? 저도 지금은 다 자란 딸이 하나 있는데, 어떻게 그 시기를 다 버텼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래도 애기가 밖에 나오면 그때부터 진짜 고생이니까요. 지금은 마음 편히 먹고, 좋은 생각만 하세요.”



고생이 많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정작 자신의 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지민은, 그녀의 모성애는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했다. 막상 뱃속에 태아가 있고, 그 심장소리를 듣기까지 했는데 애정이 샘솟지는 않았다.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아이를 벌써 사랑하고 있다는 글들을 읽으며 지민은 생각했다.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게 아닐까. 건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아직 줄 준비도 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 네. 감사합니다.”



어두워진 표정을 감추기 위해 지민은 얼른 몸을 돌렸다. 황급히 지갑을 챙겨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이 병원을 나오는 지민의 뒤로, 걱정스러운 간호사의 눈빛이 따라붙는 것 같았다.

엄마는 죽었다. 그 사실이 더는 지민의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기억 저편으로 일부러 밀어 놓은 것처럼, 무의식이었든 의식해서였든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의 부재가 물밀 듯이 지민을 덮쳤다. 엄마도 살아있었을 때는 우리를 사랑했을까. 한 번 자각한 다음에는 무차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 인터넷의 육아 카페에서 사람들이 친정엄마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레 하던 것이 떠올랐다. ‘요즘 임신해서 기분이 들쭉날쭉한데, 친정 엄마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더라구요…’

적어도 지민에게는,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 맺었던 엄마는 없다. 하지만, 엄마의 ‘마인드’는 도서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집안을 다 뒤져서 아무 데나 처박아 두었던 카드를 꺼낸 다음 도서관으로 가는 동안에도, 엄마를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질문을 제대로 헤아리기도 전에, 엄마가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속이 울렁거렸다. 막상 엄마를 만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는데도, 엄마가 그곳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주 허탈하고 복잡한 기분이 지민을 사로잡았다.

다음 날 아침 지민은 주방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속이 뒤집힐 것 같은 기분으로 일어났다. 준호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그제부터는 기름기가 섞인 냄새만 맡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물을 한 잔 따라 마시고 시계를 보았다. 오전 열 시였다.

창문을 열어 놓고 환기를 하며, 거의 오 분마다 시계를 보았다. 아직 도서관에서는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오전에 먼저 연락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고민하던 지민은 단말기를 들어 도서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송지민 씨라고요?”
“그건 제 이름이고, 찾는 사람은 김은하 씨요. 어제 갔더니 조회가 되지 않아서, 분명 먼저 연락 주신다고 했는데…”
“잠시만요.”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민은 인내심 있게 기다렸지만 선뜻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단말기를 붙잡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지민의 모습을 보고 준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방으로 들어올 때쯤에야,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서관으로 다시 방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상황이 좀 복잡하게 되어서,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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