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계열사, '1등 삼성' DNA 유지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2017.08.23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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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부재 위기의 삼성(2)]"구심점 사라져..새롭게 추진하는 것도 없고 현상유지에 급급", 금융업 '정치적 리스크' 촉각

"금융빅뱅, 4차 산업시대를 맞아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삼성 계열사들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삼성 계열사들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안도 반, 우려 반'이다. 맞형 삼성전자로부터 전수받은 '1등 DNA'로 무장하고 시장을 무섭게 뒤흔들던 삼성의 기업들이 최근 조용하다. 경쟁자 입장에선 일단 다행일 수 있지만, 글로벌 측면에서 볼 때 이 같은 '현상유지'는 사실상 퇴보나 마찬가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에도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그룹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왔지만, 최근 이 부회장의 구속과 미전실 해체가 겹치면서 '구심점'이 사라졌다.



삼성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겉으로 볼 때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그러나 내부적으로 새롭게 강하게 추진하는 것도 없고, '내실경영'을 앞세워 현상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게 솔직한 현실"이라고 전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분야는 삼성의 금융업이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지배구조 이슈를 떠나, 업계는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성장성에 우려를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은 당국의 인허가 이슈와 직결된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라며 "삼성은 현재 정치적 이슈로 인해 신사업 진출이 사실상 막힌 상태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 9일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초대형 투자은행(IB) 업무의 핵심인 발행어음 인가 심사를 보류한다고 삼성증권에 통보했다. 여기서 대주주는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이 오는 25일 1심 선고공판에서 금고형 이상의 실형을 받을 경우, 삼성증권은 대주주 결격 사유로 발행어음 사업 기회를 잃게 된다. 또 형 집행 완료일로부터 5년 동안 새로운 사업에 대한 인가 심사도 받을 수 없다.


업계는 당국이 삼성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고 지적한다. 이 부회장은 삼성증권 지분이 단 한 주도 없다. 삼성증권의 최대주주는 삼성생명이고,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회장 1인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0.06%를 보유한 특수관계인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 공포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최대주주가 법인일 경우 최다출자자 1인을 최대주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금융당국은 기존 자본시장법 시행령의 '법인의 주요 경영사항을 지배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최대주주로 포함하도록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이 부회장을 실질적인 삼성증권의 최대주주로 해석했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 역시 법률은 크게 △금융 △공정거래법 △조세 등 3가지 문제를 짚도록 하고 있다. 이번 이 부회장 재판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대주주 범위와 관련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의의 해석이 적용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증권뿐 아니라 보험, 카드 등 삼성의 다른 금융사업도 현재 상상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받게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더구나 인터넷은행, 블록체인의 출현 등 금융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기임을 감안할 때 사업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악재는 더 있다. 이 부회장이 유죄 선고를 받게 되면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 계열사 및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희 회장은 평소 "앞으로 기업 경쟁의 승패는 시간 자원을 누가 더 먼저, 누가 더 빨리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스피드 경영'을 강조했는데, 이 같은 소송은 기업 경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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