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리보 '사망선고'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7.07.2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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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금융시장서 350조달러 움직이는 기준금리…조작 파문에 2021년 폐기

영국 런던 금융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사진=블룸버그영국 런던 금융중심지인 '시티 오브 런던'/사진=블룸버그


세계 금융시장의 표준 척도인 영국 런던 은행간 금리, 이른바 '리보'(Libor)가 2021년 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27일(현지시간) 5개년 계획에 따라 2021년 리보를 다른 지표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했다.



1980년대 국제 금융거래가 활발해지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기준금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정 시장만 대변하는 금리를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금융거래의 기준으로 삼기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국제 금융거래의 기준금리로 등장한 게 영국은행협회(BBA)가 내는 리보다. 1986년 탄생한 이후 처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90년대 말에는 전 세계 파생상품과 대출 등 금융거래의 기준금리로 부상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리보를 기준금리로 삼아 움직이는 자금만 350조 달러(약 39경1230조 원)에 이른다.
리보는 원래 런던 은행들이 단기 자금을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지만 실제로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자동차·신용카드 대출, 각종 파생상품 거래에서도 기준금리로 쓰인다. 일각에선 리보에 연동돼 있는 자금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2배 이상 많을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문제는 불투명한 산출 과정에서 비롯됐다. 2012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조작 파문으로 리보의 신뢰성이 치명상을 입었다.

앤드류 베일리 FCA 청장은 이날 "우리는 시장이 계속해서 리보에 의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보는 매일 오전 11시(런던 시간) 패널에 속한 은행들이 BBA에 호가로 금리를 제출하면 상하값을 제외한 중간값의 평균으로 결정된다. 영국 바클레이스와 스위스 UBS, 미국 씨티그룹 등 패널에 속한 주요 은행들이 2012년 리보 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조작에 관여한 트레이더들은 서로 짜고 호가를 높이거나 낮춰 이익을 챙겼다.


리보는 원래 은행들이 하루 단위로 돈을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지만 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는 일은 사실상 드물다. 실제 거래가 반영되지 않는 셈이어서 조작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베일리 청장은 조작 파문 이후 지난 5년간 리보를 산출할 때 실제 거래를 반영해 현실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으려 했지만 은행간 대출 규모가 급감해 불가능했다며 리보 폐기 결정을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리보를 대신할 새 기준금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최근 실무그룹을 통해 리보를 대신할 벤치마크로 '소니아'(Sonia·sterling overnight index average)를 택했다고 전했다. 1997년에 도입된 소니아는 은행들이 영국 파운드화로 거래하는 하루짜리 대출의 기준금리다.

미국에서는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금리가 달러 리보를 대신할 새 기준금리로 부상했다. 레포시장은 은행들의 단기자금 조달원이어서 실제 금리가 잘 반영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WSJ는 미국에서 내년부터 국채 레포 금리가 달러 리보의 대안으로 도입될 전망이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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