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13만종 검색한 女법과학자의 끈기…'듀스' 의문사 기억하십니까?

머니투데이 대담=신혜선 VIP뉴스부장, 정리=이영민, 사진=김휘선 기자 2017.04.1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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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이 만난 사람들]<5>정희선 前국과수원장 '커피만 타다가…마약분석전문가→최초 여성 원장되기까지'

- 출근하면 비행기로 운반된 소변이 기다려…계속된 승진누락에 "검사하고 사표 쓰자"
- 영국 외무성 장학생 도전, 조직 내 유학길 처음 터…국내 여성 중 英여왕 최초 훈장
- 과학기술로 진실 규명하는 자부심 커…"열정? 확인할 끈기가 뒷받침해야"

정희선 원장(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은 여직원이 단 3명이던 국과수에 입사해 30년 후 최초의 여성 원장이 됐다./사진=김휘선 기자정희선 원장(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은 여직원이 단 3명이던 국과수에 입사해 30년 후 최초의 여성 원장이 됐다./사진=김휘선 기자


열풍을 일으킨 미국 드라마 'CSI'나 한국 드라마 '싸인'하면 떠오르는 곳,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다. 국과수는 1955년에 설립됐다. 그해 태어난 어떤 여자아기는 대학을 졸업한 후 국과수에 입사했다. 그리고 30년 후 국과수 수장이 됐다. 그는 국과수 최초의 여성 원장이었다.

주인공은 정희선 원장(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이다. 정 원장은 2010년 8월, 국과수가 행정안전부 산하 소에서 독립해 원으로 승격한 그 해 초대 원장을 맡았다.



국과수와 동갑인 정 원장이 입사할 때 국과수는 '금녀의 집' 수준이었다. 정 원장은 당시 여직원을 단 3명으로 기억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흔치 않던 시절인 데다 사체, 부검, 현장 검식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 험한 곳에 여성들이 지원할 리도 받아줄 리도 만무했던 때다. 입사 당시 정 원장은 지금으로 치면 7급 공무원 신분에 해당했다.

“미스 정이라 불리는 것도, 비커만 닦는 것도, 아, 커피 타는 것 모두 죽도록 싫었죠. 재미있고, 진짜 큰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 입사했는데….”



대학 3학년, 국과수 소장의 강의를 듣고 반해버렸다. 약대를 졸업하면 약국을 열거나 대학병원 취직이 수월했던 때다. 다들 그런 선택을 했는데 그는 그 길이 싫었다. 그렇게 선택한 그 길에서 그는 국과수 여성 최초의 원장(11대 소장에서 조직 승격으로 1대 원장을 다시 맡았다)이 됐다. 더불어 국제법과학(IAFS) 서울학회에서도 여성 처음으로 회장을 맡았고 한국 여성 최초로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을 받았다. 현재는 여성을 넘어서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법독성학회(TIAFT) 회장을 맡고 있다. 한마디로 마약 등 독극물분야에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법 과학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정희선 원장이 조직의 수장자리까지 오르고 34년을 다닐 수 있었던 힘은 기회를 직접 만들고,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체화한 실력이다./ 사진=김휘선 기자정희선 원장이 조직의 수장자리까지 오르고 34년을 다닐 수 있었던 힘은 기회를 직접 만들고,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체화한 실력이다./ 사진=김휘선 기자
이력만 보면 ‘저돌적’이거나 ‘카리스마 넘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 만난 그는 더없이 유연했다. 더군다나 “버틴 결과”라며 웃는다. “나보다 못하는 사람들도 승진하는데 제 승진만 계속 누락되고…. 그만두고 싶었는데, 소변 때문에 버텼어요. 하하하.”

국과수니까 별의별 일화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나?”라는 질문에 난데없이 ‘소변’이란 단어가 나왔다.


- 소변요?
▶ 입사 10년쯤일 겁니다. 업무성과도 높은데 계속 물먹는 거예요. 정말 다니기 싫었어요. 그때 나를 버티게 한 가장 큰 힘이 소변이었어요. 그때 우리 수준은 분말을 보고 마약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정도였습니다. 마약을 먹은 뒤에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 거죠. 미국으로 출장을 갔는데 소변으로 실험해 알아내더라고요. 돌아와서 우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의견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때부터 기술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았죠. 쥐에 마약을 넣어 그 오줌으로 실험했죠. 쥐 10마리의 오줌을 6시간, 9시간, 12시간 간격으로 받아서 언제까지 성분이 검출되는지. 쥐 오줌량이 얼마 되기나 하나요. 하하하. ‘출근하면 소변이 기다린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이태원에서 마약을 한 사람의 소변테스트에서 성공했어요.

국과수가 소변으로 마약을 검출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출근하면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경찰이 가져다 놓은 소변이 기다렸다. “이거까지는 하고 (사표 쓰는 것) 생각하자” 했다는 그는 “결국 (사표) 쓸 시간이 없어서 다닌 셈”이라며 다시 웃는다.

얘기를 듣다 보니 정 원장이 조직의 수장자리까지 오르고 34년을 다닐 수 있었던 힘은 그저 버티기가 아니었다. 기회(일)를 직접 만들고 조직에 필요한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하고 그 아이디어를 실체화한 실력이다. 그리고 책임과 끈기가 그 실력을 뒷받침했다. ‘가짜 꿀 판별 분석’이나 조직에서 처음 유학길을 뚫은 것 등 모두 도전의 결과물이다.


- 꿀 분석 방법론 개발로도 유명하시던데요.
▶ 입사 8개월쯤인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상사를 찾아가서 “(저도) 일하고 싶다”고 했죠. 가짜 꿀 분석팀에 넣어주시더군요. 대히트였습니다. 경찰청(치안본부)에서몇 억짜리 가짜 꿀 만든 사람을 잡았는데 제 분석법으로 성공한 것이죠. 다음엔 가짜 참기름 실험도 하고. 약대 나온 게 큰 도움됐습니다.

정희선 원장은 2014년 한국 여성 최초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사진=김휘선 기자정희선 원장은 2014년 한국 여성 최초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사진=김휘선 기자
- 2014년에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도 받으셨어요.
▶ 예. 우리나라 여성 중 영국 여왕에게 훈장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을 겁니다. 실은 영국 1년 유학이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영국 외무부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더라고요. 유학 전에는 마약(독극물)에만 파묻혀 있었는데 영국에 가서 과학수사에 대한 제 인식의 범위가 크게 확대됐습니다. ‘과학수사가 새로운 학문이구나.’ 그리고 또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와 영국이 교류할 수 있을까. 영국 시스템을 도입하고 우리 기술을 알릴 수 있을까.’ 귀국 직후 영국 문화원에 제안했죠. “반반씩 돈을 대서 교류하자."

정 원장은 공부벌레였다. 국과수에서 석·박사를 마치고도 공부를 해야겠다(포스닥)고 생각했다. 영국 유학은 너무도 매력적인 기회였다. 당시 면접을 본 영국 1등 서기관과 영국문화원장의 호의도 한몫했다. 한국에서 과학수사를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더군다나 여성이었으니. 당당히 합격했다. 문제는 국과수였다. 1년 이상 유학이나 연수를 간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국과수 직원 신분으로 영국의 국가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기회를 얻었는데 조직에서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정 원장은 국과수에서 1년 장기 유학 첫 사례를 만들었다.

"영국에서 파견 온 분들이 하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한국에 올지 말지 고민했는데 공항 도착 이후 (발전 정도를 보고) 놀랐다고 하더군요. 국과수 직원들이 일도 잘하고. 영국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쳐준 게 아니랍니다." 양국의 법 과학자들이 서로 오가며 과학 수사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은 2000~2007년까지 이어졌다. 훈장은 양국 법 과학 교류와 발전에 대한 영국의 감사와 공로에 대한 치하였다.


- 1995년 가수 약물 사망 사건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죠.
▶ 예. 약독물과 과장이었을 때입니다. 바늘 28개가 발견됐으니 당연히 마약이라고 생각했는데 부검의가 좀 이상하다고 합디다. 흔히 마약을 복용하는 사례와 패턴이 달랐어요. 화학물질 3만개, 5만개, 10만개의 종류를 다 뒤졌는데도 안 나오는 거예요. 꿈에 나타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지요. 물질 범위를 13만종까지 늘리니 그제야 비슷한 게 나왔습니다. 그 성분이 뭔지 또 모르겠더라고요. 당시 홍릉(산업연구원)으로 바로 갔죠. 신청하면 1주일 후에 결과가 나오는데 기다릴 수가 있어야죠. 전산화가 안돼 저널을 일일이 다 찾아야 했습니다. 딱 하나, 이거다 싶은 게 나왔습니다.

동물마취약이었다. 동물 안락사 용도라 쉽게 살 수 없는 약품이었다. 수의사협회 지원을 받아 약품 실험을 하니 같은 약물로 판명됐다. 동물마취약 보도 후 어떤 수의사가 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어 "아무개에 팔았다"고 제보해 약을 사간 이를 찾을 수 있었다. 타살 의혹이 컸지만 그 사건은 규명되지 못했다.

그는 과학수사에 대해 다시 느끼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미지물질을 찾는다는, 일종의 과학하는 마음으로 했지만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다시 깨닫게 돼서다. 그전까지 과학수사를 ‘연구’라는 관점에서 봤다면 그 사건을 계기로 ‘범죄수사’로 인식하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 원장이 되고 난 후 어떻던가요. 많은 생각이 교차했을 거 같습니다.
▶ 제가 원장이 됐을 때 아마 여직원 수가 30%에 육박했을 겁니다. 임기 4년간 여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준 적 없습니다. 실력이 된다면 공정하게 하고자 했죠. 물론 여자라고 봐주지도 않았습니다. ‘핸디캡’을 강조하지 않았으면 해요. ‘여자니까’ 하지 말고 경쟁에서 이겨나갈 방법을 궁리하라고 했죠. 여직원들이 확실히 집중력이 좋아요. 근무시간에 집중하고 칼퇴근하라고 합니다. 다만 국가가 다른 건 몰라도 육아문제만큼은 책임져주길 바랍니다. 유능한데도 육아문제로 그만두는 일은 있어선 안되지 않습니까. 분야별로는 모두 다 고생하는데 특히 화재담당 부서는 마음이 아파요. 이천, 부산 등 대형 화재현장에 간 적이 있는데 마스크를 해도 어지럽더라고요. 그 어려운 환경에서 몇 날을 고생하며 현장을 살피는 모습을 보니 감동이었습니다.

- 원장님 덕분에 철 지난 드라마 '싸인'을 몰아보기 했어요. (웃음) 외압이나 권력과 결탁에 대한 오해가 있을 법도 한데.
▶ 드라마 중간까지도 불편했어요. 우리가 권력에 타협하고 양심을 파는 그런 존재라니. 실제 어떤 이는 “그 암투를 거쳐 원장까지 되셨어요”란 말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기술이나 실력이 낮아서 해결 못한 게 있을지 모르지만 조작 같은 건 없습니다. 감정서를 쓸 때 자기 이름으로 씁니다. 내 이름으로 법정에서 증언한다는 것이죠. 국과수 직원들은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나중엔 (제작진에게) 감사한 맘이 더 컸습니다. 드라마의 설정이야 원래 그런 것이고 국과수가 주인공인 거잖아요. 시청자들이 과학을 토대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국과수의 노력을 더 많이 오래 기억하니 고마운 것이죠.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법의관이 되겠다고 편지도 쏟아졌고 대단했어요.

"아직도 밤새워 공부하는 게 제일 자신 있다"는 정희선 원장은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그릿'(GRIT)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사진=김휘선 기자"아직도 밤새워 공부하는 게 제일 자신 있다"는 정희선 원장은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그릿'(GRIT)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사진=김휘선 기자
“아직도 밤새워 공부하는 게 제일 자신 있다”는 그는 국과수에 대한 애정과 긍지를 숨기지 않았다. 과학자로서 연구성과를 올려도 기쁜데 국과수의 일은 진실을 파헤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 과학자의 만족감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대학원에는 여학생이 절반에 달한다. “저처럼 독극물 마약분석을 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석·박사에 6명이나 있답니다.” 34년 전 상사에게 ‘일을 달라’고 했던 눈빛이 이랬을까. 영국 유학 합격증을 갖고 와 ‘보내달라’고 했을 때가 그랬을까. 열정적이고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는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 ‘그릿’(GRIT)을 더 강조한다.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앞글자를 딴 말이다.

“우리 때는 경쟁이 덜했으니 미안하죠. 다만 낙담하지 않고 버티는 끈기와 용기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덕(德)이요. 요즘엔 자기 실력으로 중간 관리자까진 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엔 사람 사이, 관계를 푸는 소통능력, 숲을 보는 자세입니다. 기본실력은 검증된 거잖아요. 여성과학자들, 똑똑함을 앞세워 무조건 대립하지 말고 일단 버티고 한발 물러섰다가 두 발 전진하는 식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 "오로지 과학적인 진실만을 추구 … 김정남 독살 약품 VX, 우리도 밝힐 수 있어"

1978년 정희선 원장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입사할 때 1백여 명의 직원 중 단 3명이었던 여직원은 34%(387명 중 130명)에 달한다. 인재를 성차별 없이 채용하는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여성의 도전도 크게 늘었다. 드라마 ‘싸인’의 여성 주인공(김아중)처럼 여성 부검의는 물론 유전자 분석, 마약, 약독물 분야 등에는 오히려 여성이 더 많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범죄의 기술도 교묘해지게 한다. 당연히 해결 열쇠도 함께 고도화될 수밖에 없다. 정 원장은 “부검부터 유전자, 위조지폐, 글씨 필적, 도장, 범죄심리인 사이콜로지(상담심리), 마약 약독물, 화학·엔지니어링·공학 파트, 목소리 분석 등 국과수에는 과학만이 아닌 인문학을 포함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모든 분야가 다 들어있다”며 “영상분석, 이미지 분석가가 요새 뜨는 분야”라고 소개했다. 이 분야는 CCTV나 번호판 이미지 복원 등을 생각하면 쉽다.

정 원장은 “현 과학기술로 범인을 특정할 때 유전자보다 더 정확한 게 없어 유전자 분석은 현재 과학기술의 꽃”이라며 “국과수 업무가 시체부검 등 험악한 일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뜻밖에 재미있는 분야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과학 수사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정 원장은 UN(유엔) 마약통제본부(마약범죄사무소) 지정 기준 실험실 10개 중 한 곳이 국과수임을 예로 든다. “전 세계에서 실험할 수 있는 곳이 몇백 개는 되죠. 그곳에 시료를 보내 실험 데이터를 평가해 기준 실험실로 정했는데 거기에 우리가 뽑힌 거죠.”

독극물 전문가인 정 원장에게 김정남 독살 사건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 원장은 “VX는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사건 때 쓰인 화학물질과 비슷한데 공기 중 기화되지 않아 직접 닿지 않으면 중독되지 않는 차이점이 있다”며 “VX라는 걸 모르는 상태로 찾아냈으니 말레이시아 측도 실험을 굉장히 잘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정 원장은 “독성이 너무 커서 A, B 물질을 따로 만들어 사용 직전에 섞은 것”이라며 “한국에서 맡았다면 (시간의 문제지) 국과수도 꼭 찾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오로지 과학적인 진실만을 추구한다.’

‘싸인’을 본 시청자라면 아주 익숙한 문장일 것이다. 이 문장은 실제 국과수 윤리헌장의 첫 번째 항목이다. “3년만 일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34년을 일한 건 그만큼 보람과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정 원장은 “과학으로 진실을 찾는 사람들로 국과수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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