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를 넘어선 휴머니즘이 담아야 할 것들

머니투데이 신혜선 VIP뉴스부장 2017.04.0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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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이 만난 사람들]<4>홍성욱박사 “트랜스휴먼시대, 소수자·동물·환경·기계·우주를 포함하는 관계…기술결정론에서 벗어나야”

인간 이후 인간의 모습은 어떨까. 이 시대 인간은 어떤 관계속에서 소통하고 살아야하나. 포스트휴먼의 등장은 칸트 기반에 설계된 인간존재론의 모든 것이 다시 쓰여져야함을 말한다. 사진 위부터 영화 'A.'I, 'X마키나', '공각기공대' 스틸컷인간 이후 인간의 모습은 어떨까. 이 시대 인간은 어떤 관계속에서 소통하고 살아야하나. 포스트휴먼의 등장은 칸트 기반에 설계된 인간존재론의 모든 것이 다시 쓰여져야함을 말한다. 사진 위부터 영화 'A.'I, 'X마키나', '공각기공대' 스틸컷


홍성욱 박사는 “‘인간은 더는 진화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고, 이미 우리는 그 과정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포스트휴먼은 이미 시작됐다. /사진=김창현기자<br>
홍성욱 박사는 “‘인간은 더는 진화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고, 이미 우리는 그 과정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포스트휴먼은 이미 시작됐다. /사진=김창현기자
영장류의 최고라는 인간 종이 더는 진화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의 세계에서 인간을 생물학적 진화의 끝으로 보는 시각을 고집하는 것은 더는 의미 없다. 왜? 주변을 둘러보라. 약물이나 인공관절, 심박기 등 의학이나 과학기술에 의존해 삶을 살거나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홍성욱 박사(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가 “트랜스휴먼(transhuman·trans-human)은 현재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인간은 더는 진화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고, 이미 우리는 그 과정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트랜스휴먼은 자연적인 진화나 기술적, 의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지금의 인간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갖추게 된 인간을 말한다. ‘포스트휴먼’과도 함께 사용된다.

홍 박사는 서울대학교와 한신대학교가 함께하는 ‘포스트연구사업단’ 멤버다. 과학자와 종교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포스트휴먼 시대를 연구한다.



홍 박사는 국내에 과학기술학(STS)를 도입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 박사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2016 동아시아)는 책에서 과학철학자 쿤의 패러다임 개념을 확장해 살아움직이는 네트워크 관점의 인간 활동과 인간 관계를 설명한다.홍 박사는 국내에 과학기술학(STS)를 도입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 박사는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2016 동아시아)는 책에서 과학철학자 쿤의 패러다임 개념을 확장해 살아움직이는 네트워크 관점의 인간 활동과 인간 관계를 설명한다.
인간 이후 인간을 연구하는 포스트휴먼 관련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느는 추세다. 의학을 포함한 과학 기술이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가면서 인간 생명 연장을 비롯해 인간 그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어서다. 기술의 힘으로 사람이 ‘사이보그화’ 되는 것은 물론 유전공학의 힘을 빌린 복제, 로봇에 장착한 AI(인공지능) 그리고 의식의 업로딩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인간의 의식, 기억과 추억이 무엇에 혹은 다른 이의 몸에 옮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 때 물리학을 공부한 홍 박사는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TS(사이언스테크소사이어티)’ 영역에서 과학과 사회를 연구해온 홍 박사로서는 피할 수 없는 화두를 안게 된 셈이다.

홍 박사는 포스트휴먼에 앞서 비록 소수(돌연변이로 표현할 수도 있다)지만 우리가 모르는 인간의 가능성부터 다시 짚는다. 얼마 전 인터넷을 달군 한 동영상을 한 예로 제시한다. ‘지구 상의 신기한 어부 이야기’다. 동남아시아에 사는 한 어부는 바다의 바닥까지 내려가 걷고, 거기서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다. 어떤 장치도 없다. 5분 정도 그러다가 물 위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깜짝 놀랐죠. 합성도 아니라고 하고. 이 영상의 마지막 해설은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돼 대부분 물에 잠긴다면 새 인종이 시작되지 않을까’였습니다. 어떤 기후 문제로 지구가 물에 잠겼다고 가정해봐요. 인류는 멸종하겠지요. 하지만 동영상의 어부처럼 지구 어디엔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인간과 다른 인간이 살고 있다면, 그 인간의 조건이 그 환경에 적합하다면, 인류는 거기서 다시 이어지는 거 아닐까요. 호모사피엔스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는데 특정 시기 숫자가 대폭 줄어든 것으로 압니다. 살아남은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은 '유사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조금 다른 호모사피엔스가 특정 시기에 살아남지 못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더 다양한 유전인자가 우리 몸속에 있을 수도 있지만 발현이 안 됐을 수도 있고, 조금 다른 유전인자를 가진 인간들이 지구 어느 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을 수도 있죠.”

미래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인간 종의 또 다른 가능성을 우선 얘기하는 이유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관심을 인간이 구현할 새로운 기능이나 능력에 국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휴머니즘은 일종의 칸트 시절의 윤리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특성, 도덕, 정치, 그 관계가 다인 것처럼 생각하죠. 트랜스휴먼이나 포스트휴먼의 휴머니즘은 인간과 소수(마이너리티) 인간(돌연변이), 인간과 동물, 인간과 환경, 인간과 우주 등을 다 포함해야 합니다. 하나의 영역이 아닌 과학, 인문학, 예술, 종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죠.”

지금의 휴머니즘을 넘어선 더 깊은 비전을 제시하려면 이제 시작되는 여러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과학으로 한정돼서는 안 된다. 인문학, 종교, 예술 여러 영역에서 함께 얘기해야 한다.

4차 산업 혁명 논의나 AI가 대표적이다. 지금의 담론은 대부분 미래사회가 어떻게 바뀌는지, 직업이나 주도하는 핵심산업과 전략 기술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연 그게 다일까.

“우리의 삶과 가치관이 어떻게 달라지는 게 바람직한지, 지금과 달라야 하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등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단순화하면 과학기술 위주의 기술결정론 위험성을 줄이고 가자는 거죠. ‘기술이 발전하고 거기 적응하고 안 하면 도태할 거다’에만 집중하는데, 인간이 그리 단순한 존재여야 말이죠. 사람은 늘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가, 타자와 어떤 관계여야 하나 고민하는 존재 아닙니까?”

로봇 연구도 마찬가지다. “군사로봇 개발에 쏟아붓는 연구비는 얼마나 될까요. 군사로봇 찬성론자 적지 않죠? 보복전쟁이나, 여성 강간 등을 생각할 때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는 겁니다. 드론도 조종사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환영받았죠, 군사물자를 옮기는 이동로봇도 그렇고요. 하지만 전쟁 자체가 문제라면 이런 논의는 무의미한 겁니다. AI에 대해 우리는 일자리를 우선 걱정하지만, AI도 전쟁에 우선 사용될 수 있습니다. IT 기술의 군사화에 대해 드러내놓고 논의한 적 있던가요. 과학이 (참혹한 전쟁의 도구로써) 20세기 그것과 다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텐데. ”

지구는 인간 종만 사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70억 여명의 인간은 인간조차도 살기 어려울 정도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홍성욱 박사는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은 인간과 인간만이 아닌 소수자, 동물, 기계, 환경, 우주까지 인간과 맺는 모든 관계를 포함한다"고 말한다. /사진=김창현 기자<br>
지구는 인간 종만 사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70억 여명의 인간은 인간조차도 살기 어려울 정도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홍성욱 박사는 "트랜스휴먼, 포스트휴먼은 인간과 인간만이 아닌 소수자, 동물, 기계, 환경, 우주까지 인간과 맺는 모든 관계를 포함한다"고 말한다. /사진=김창현 기자
홍 박사는 ‘인류세’(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크리춴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 등장 배경의 타당성도 말한다.

“지구는 정말 커서 인간의 활동, 어떤 행위도 지구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자연 앞에 인간은 너무도 미약한 존재니까요. 이런 관점은 기후변화에 대한 여러 우려가 부풀려졌다는 근거로 얘기되기도 합니다. 지구가 워낙 큰 존재라 인간이 공장을 짓고 도시 산업화를 아무리 해도 지구 전체 기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거죠. 20세 중반까지는 타당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게 아니라는 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기 농도, 온도 등등, 1945~55년에 걸쳐 모든 지표가 수직 상승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인공위성으로 보면요, 사람의 활동이 어마어마한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게 다 보입니다. 쓰레기를 버리고, 간척사업을 하고, 유조선이 침몰해 바다가 오염되고. 70억 명이 넘는 인간 단일 종이 지구를 뒤덮은 상태입니다.”

"로봇 개는 발로 차도 되는가. 교통사고로 죽은 로봇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답을 해야할 지, 미래 인간 시대의 새로운 휴머니즘을 고민할 때다./사진=김창현기자"로봇 개는 발로 차도 되는가. 교통사고로 죽은 로봇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답을 해야할 지, 미래 인간 시대의 새로운 휴머니즘을 고민할 때다./사진=김창현기자
지구는 인간 종만 사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인간조차도 살기 어려울 정도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08년에 나온 ‘지구가 멈추는 날’(1951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영화는 이런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다른 별의 우주인이 지구를 공격해 인간을 멸종시키려 한다는 영화 속의 경고를,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가능성을 낙관하지만, 오만이 불러오는 재앙을 성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홍 박사는 “빈번한 국지전, 빈부격차, 난민 문제 등 현재 인간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관점에서 포스트휴먼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4월 8일부터 월 1회 ‘홍성욱 박사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가 연재됩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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