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로 일자리 늘리고 정년 없앤 '신기한 기업'

머니투데이 백선기=이로운닷넷 기자 2017.03.1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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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우리동네 히든챔피언] 장애인의 사회 진출 돕는 서울 영등포구 사회적기업 ‘리드릭’

편집자주 나랏님도 풀지 못한다는 숙제를 척척 해결해 나가는 이웃들이 있다. 돈벌기는 기본! 우리 동네에 일자리를 만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환경을 지키는 착한 기업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히든 챔피언’ 즉 대중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장을 이끄는 우량기업의 새로운 모델이 아닐까? 머니투데이는 서울형 사회적기업 이로운넷과 공동으로 '우리 동네 히든 챔피언'을 발굴해 그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서울시 지적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한 리드릭 직원들./사진제공= 리드릭서울시 지적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한 리드릭 직원들./사진제공= 리드릭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좋아요. 승진도 하고요. 예전에 형광등 조립 공장에 다녔는데 한 달이 지나도 월급을 안 줬어요. 항의했더니 ‘법대로 하라’ 하더군요. ”

사회적기업 리드릭에서 7년 넘게 일하는 지구성 주임은 지적장애 3급이다. 복사용지를 재단하는 것부터 지게차를 이용한 운반까지 다양한 일을 척척 해낸다. 그 사이 월급은 135만 원으로 올랐고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했다. 그는 “리드릭에 뼈를 묻고 싶다”고 했다.



◇직원 중 장애인 69%…정년 없는 평생직장

리드릭은 장애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직업재활시설이자 사회적기업이다. 인쇄 및 복사용지를 생산한다. 2014년부터 3년 연속 서울시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일단 입사하면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아 장기근속자가 대다수다.



복사용지 생산팀에서 일하는 장필원 주임(지적장애 2급)의 근속연수는 10년 가까이 된다. 73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어엿한 가장이기도 하다. 멀리 경기도 양주에서 서울 영등포까지 출근하느라 매일 새벽 5시면 눈을 뜬다. 그는 “월급으로 조카들 교복도 사주고 대학교 등록금도 보태줬다”고 자랑했다.

리드릭의 직원은 총 80명이다. 이 가운데 청각·지체·지적장애를 가진 직원이 69%인 55명에 이른다. 특히 고용 시장에서 외면 받는 지적장애인이 42명이나 된다. 리드릭의 지적장애인 급여는 월 40만 원에서 시작한다. 최저 임금을 받는 직원은 11명이고 그보다 더 많이 받는 사람도 있다. 지적장애인 직원들의 급여는 많게는 130만 원 내외이며 평균 급여는 80만 원에 가깝다. 일반인들은 최저임금 적용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2014년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보고서에 따르면 시설에서 근무하는 장애인 10명 중 4명(39%)은 급여가 월 10만 원 미만이며, 평균 급여도 24만 원에 불과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직업재활시설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중증 장애인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김정열대표(앞줄 왼쪽에서 두번째)와 리드릭 직원들. 직원 80명 가운데 42명이 지적장애인이다./사진제공= 리드릭김정열대표(앞줄 왼쪽에서 두번째)와 리드릭 직원들. 직원 80명 가운데 42명이 지적장애인이다./사진제공= 리드릭
◇ "수익은 공동체 안에서 100% 재분배"

리드릭은 중증 장애인과 전문가가 함께 하는 생산 공동체다. 매출의 99% 이상이 출판 인쇄와 복사용지 판매에서 나온다. 그러나 매출의 1%에 불과한 우편물 직접 발송사업과 단순조립에 20명이 넘는 장애인 직원들이 근무한다.

김정열 리드릭 대표는 “수익은 기술자들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일반기업처럼 투자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며 “생산 공동체 안에서 100% 재분배되는 구조라 지속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동종업계 수준의 임금을 받지만 인센티브는 없다. 함께 나누기 위해 개인의 이익은 최소화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인센티브를 많이 받는 업종인 영업직 직원들은 자주 바뀌는 편”이라며 “리드릭의 미션은 ‘함께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들은 붙잡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경자 영업팀장은 “직원들 사이에 월급 부문에서는 불만이 있다”며 “하지만 대표님 월급도 많지 않다”며 웃어넘겼다. 리드릭은 경영공시도 하지만 임원회의를 통해 예산과 실적 등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성과 평가 배분 기준도 만들어진다.

우편물 직접 발송 작업에 손놀림이 바쁜 직원들. /사진제공= 리드릭우편물 직접 발송 작업에 손놀림이 바쁜 직원들. /사진제공= 리드릭
◇ ‘효율’보다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 문화

리드릭은 지난해 11월 수익성이 제로인 우편물 직접발송 사업 분야에 직원 2명을 더 뽑았다. 일반 기업과는 완전 거꾸로 가는 시스템이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한 명이라도 더 뽑자는 미션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3년 전부터는 정년제도도 없앴다. 반대도 많았다. 정말 나가야 할 사람이 안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 상당수가 장애를 가졌습니다. 일을 그만 두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할까. 집이 잘 살면 괜찮은데 장애가 있는 가정은 대개 부유하지 못해요. 직원들은 나이가 많고 당연히 부모들 나이도 많죠.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

김 대표가 정년을 없앤 진짜 이유다. 현재 환갑이 넘은 직원은 2명이다. 인쇄 업무에 베테랑인 황진오 이사는 62살이다. 그는 “급여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 나이에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이 어디냐”며 “조카도 장애인이라 중증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이라는 데 더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척추장애인인 오세걸 차장은 68세다. 그는 “이렇게 오래 다닐 줄은 몰랐다”며 “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답답한 구석도 있지만 순수해 참 좋다”고 직장분위기를 소개했다.

생산공정도 반자동화 시스템을 고수한다. 일이 자동화 한다면 더 많은 복사용지를 납품할 수 있지만 장애인 고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리드릭은 더디 가더라도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한다.

방종혁 직업재활팀장은 “중증장애인들의 작업 능력이 갑자기 향상되기는 어렵다”며 “직장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길러주고 대인관계를 향상시키는 일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리드릭에선 지적 장애인들의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급여는 근속연수에 따라 올려주고 승진도 시켜준다.

복사용지 생산 공정은 장애인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반자동시스템으로 운영된다./사진제공= 리드릭복사용지 생산 공정은 장애인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반자동시스템으로 운영된다./사진제공= 리드릭
◇매출 70억 원 돌파…그래도 목표는 “망하지 말자”

리드릭은 1989년에 세워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산하 기관이다. 이 연구소는 장애인복지법개정을 비롯해 장애인고용촉진법과 장애인차별 금지법 제정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이 있었다. 바로 중증지적장애인들이다.

“법 제정을 위해 많은 장애인 부모님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힘써 주셨죠. 그런데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적장애인들은 여전히 갈 곳이 없어요. 그 분들의 아픔이 전해져 무언가 해야만 했어요.”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 해법으로 나온 것이 리드릭이다. 2006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산하의 사업단으로 출범해 2008년에는 직업재활시설 설립 및 인가를 받고 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리드릭은 법을 제정해 장애인들이 진출 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그 사업을 통해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적극적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리드릭의 2015년 매출은 70억 원. 매출 규모는 크지만 80명의 직원을 고려하면 생산성이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 건 제도 덕분이다. 중증장애인 시설로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의 보호를 받는다. 현재 공공기관 400여곳에 전단과 책자 카탈로그 등 인쇄물을 납품하고 있다.

보호는 받지만 경쟁은 불가피하다. 리드릭의 경쟁력은 신실함과 진정성이다. 정부 일은 대개 연간 단위로 한번 하면 끝인 경우가 많다. 리드릭은 다르다. 한국은행과는 4년 연속 거래하고 있고 고객사들 대부분 담당자가 바뀌어도 리드릭을 계속 소개해주는 풍토다. 때론 선수금을 주고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리드릭은 지난해 19만상자 (35억여원)의 복사용지를 납품했다./사진제공= 리드릭리드릭은 지난해 19만상자 (35억여원)의 복사용지를 납품했다./사진제공= 리드릭
◇"무능력한 사람들도 세금 내며 10년째 잘 살고 있다"

리드릭은 올해 개원 10주년을 맞는다. 5월에는 리드릭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평가하는 사회적 임팩트 연구 결과가 나온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사회의 눈으로 보면 리드릭은 투자할 만한 곳이 아니다. 학력이나 기술이 뛰어난 곳이 아니고 앞으로 그럴 가능성도 적다. 그러나 이른바 능력 없는 사람들도 세금을 내고 당당히 살아간다.

김 대표는 “망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무능력한 사람들도 10년째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곳임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만약 리드릭이 문을 닫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장애인 직원의 절반 이상이 생활시설로 가야 할 겁니다. 생활시설에 가면 1년에 몇 번이나 바깥에 나가 볼까요.”

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생활시설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기보다는 사회 취약계층을 고용해 더불어 살아가도록 돕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편이 훨씬 큰 성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리드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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