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는게 나았다"…위안부 할머니 10인의 '증언'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6.12.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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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0인 증언과 역사적 입증자료 담아 사례집 발간…"저항하면 발가벗겨 때렸다"

연합군이 송산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위안부’ 들과 찍은 사진. 1944년 9월 7일, 햇필드(hatfield)  이병이 촬영한 사진으로 오른쪽 임신한 여성이 박영심이다. 아이는 곧 사산됐다고 한다./사진=서울시연합군이 송산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위안부’ 들과 찍은 사진. 1944년 9월 7일, 햇필드(hatfield) 이병이 촬영한 사진으로 오른쪽 임신한 여성이 박영심이다. 아이는 곧 사산됐다고 한다./사진=서울시


#. 위안부 김소란(가명) 할머니는 1926년 경북 군위에서 일곱 딸 중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났다. 1941년 봄, 가정형편은 어려웠고 큰 언니가 "병원에 붕대 같은 것을 씻어주면 한 달에 돈 얼마큼씩 받는다"는 말에 필리핀 마닐라의 한 시골로 갔다. 사흘 만에 군인들이 들이 닥쳤고, 쉰이 넘은 일본인 할아버지는 발길로 차고 말도 못하게 했다. 김 할머니는 "정말 이게 사는 게 아니라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에 한번 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했다"고 증언했다.

서울시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 10인의 생생한 증언과 역사적 입증자료가 담긴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을 발간했다고 29일 밝혔다.



1991년 8월 故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이후 지난 26년간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서적이 발간돼 왔지만, 증언과 근거자료를 접목해 입체적으로 분석한 사례집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위안부 피해 사례를 증언한 10인은 김소란(가명, 필리핀), 김순악(중국·내몽고 장가구), 박영심(중국 남경, 운남), 문옥주(중국 동안·버마), 배봉기(일본 오키나와), 김복동(싱가포르·인도네시아), 김옥주(중국 해남도), 송신도(중국 무한), 박옥련(남태평양 라바울), 하상숙(중국 무한) 할머니다.
김소란(가명) 위안부 할머니의 심문카드./사진=서울시김소란(가명) 위안부 할머니의 심문카드./사진=서울시
내용은 위안부 피해 여성의 생애사를 다루는 데 집중했다. 기존 증언집은 피해상황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식민지 사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다가 끌려가게 되었는지부터 멀고 먼 귀환 여정, 그리고 귀환 후 생활까지 상세히 담았다.



사례를 보면 1912년 12월 15일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태어난 박영심 할머니는 집이 가난해 학교도 가지 못했다. 1938년 3월 박 할머니는 일제의 ‘처녀공출’ 에 걸려들었고, 친구와 함께 강제로 평양에 압송됐다. 중국 남경으로 끌려간 박 할머니는 일본군 병영에서 500m 떨어진 긴스이루 위안소에 20명의 조선인 여성들과 있었다. 그는 "일본군은 하루에 30명 정도 왔다. 저항을 하면 다락방으로 끌려가서 발가벗겨진 채 매를 맞아야 했다"며 "일본병을 상대하는 하루하루는 인간의 생활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도망가고 싶었지만 감시는 엄혹했다"고 증언했다.

엄규숙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반 시민이나 국제사회의 관심은 매우 높은 데 반해 정작 위안부 백서조차 발간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며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구체적 증거를 통해 위안부 실태를 명확히 증명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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