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차대전을 계기로 폐허가 된 카야쾨이 마을/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여행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대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여행지, 여행의 목적 등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혼자 떠나보라고 권한다. 고독 속에 나를 던져 넣는 순간, 여행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기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쓰려면 혼자가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여행도 많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경우, 불안해서 또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서 친구나 동료와 함께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실크로드 탐사’ 같은 프로젝트 여행은 혼자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두 명, 혹은 여럿이 다니는 여행에도 문제는 많다. 마음이 안 맞아서 여정이 불편해지거나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카야쾨이는 세계1차대전의 비극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마을이다. 독일 편에 서서 참전했다가 패망한 오스만 제국은 연합국과 굴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바로 1920년 8월에 체결된 세브르 조약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영토 대부분을 잃고 이스탄불 일대와 아나톨리아반도만 남기게 되었다. 한없이 불리한 조약에 분노한 터키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연합국들은 스위스 로잔에서 터키 문제를 다시 논의했다. 결론은 세브르 조약을 파기하고 로잔 조약을 체결하자는 것이었다. 1923년 7월4일 새 조약은 체결됐지만,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이날 시작된다.
한국인 여성을 만났던 교회. 역시 폐허가 됐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부천에 사는 스물여섯 살의 직장 여성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에 다니며 모은 돈을 모두 해외여행에 쓰기로 했단다. 혼자 다니기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니, 처음에 비해 많이 괜찮아졌다며 그동안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원래는 혼자가 아니었단다. 인터넷 여행 사이트에서 만난 또래 여성과 함께 떠났는데 몇 곳을 다니면서 의견 차이가 잦았던 모양이었다. 결국 각자 원하는 곳을 다니기로 하고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오래 사귄 친구도 아니고,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끼리 함께하는 여행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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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폐허가 된 교회 마당에 서서 그녀와 긴 얘기를 나눴다. 내 나라에서 만났으면 스쳐지나갈 인연이었을 텐데….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담 사이로 걸어가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혼자 떠나는 뒷모습이 고독해보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역시 여행은 돈보다 용기가 먼저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