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문턱 넘었더니 졸업못할 판…'영란법의 덫'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2016.10.3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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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전 취업자 '출석인정 부탁'=부정청탁 가능성, 대학생들 "영란법, 취업에 영향"

취업 문턱 넘었더니 졸업못할 판…'영란법의 덫'


#취업을 준비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대학생 정모씨(27·여·서울대)는 이달 27일 원하던 대기업에서 입사 시험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였다. 다음날 학교 수업시간에 담당 교수를 찾아 '취업계' 제출을 의논했다. 교수는 "수업을 안 나오고 학점을 취득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라고 거부했다. 다른 수업 교수는 "김영란법에 걸리는 것 알죠?"라고 정씨를 돌려보냈다.

#대학생 박모씨(28·연세대)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달 24일 입사 합격통지서를 받고 일주일 내내 교수들을 찾아다녔다. 교수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번 학기 수강 중인 여섯 과목 담당 교수 6명 중 3명이 취업계에 대해 '원칙적 불가' 입장을 밝혔다. 정씨는 "간신히 취업에 성공했는데 이제는 졸업을 못하게 된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재학 중 취업 문을 뚫은 대학생들이 생각지 못한 덫에 걸렸다. 대기업들이 연이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결과를 발표하면서 졸업 전 조기 취업자들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발목이 잡혔다.

30일 국민권익위원회 등 관련 기관들에 따르면 김영란법에 따라 담당 교수에게 취업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조기 취업생들의 행동은 부정청탁이 될 수 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교수가 특정 학생에게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도 학점을 받는 '특혜'를 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학칙'으로 이 같은 예외를 허용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학칙을 마련하지 않은 학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취업계 제출이란 취업활동증명서를 내는 개념으로, 졸업 전에 취업한 학생이 신입사원 교육 혹은 출근 등으로 출석을 할 수 없더라도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봐주던' 비공식 관행이다. 대부분 대학에서 별다른 학칙 없이 그동안 암묵적으로 용인해왔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제동이 걸렸다.

실제로 대학생 10명 중 8명은 김영란법이 취업을 준비하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취업 준비 중인 대학생 332명을 대상으로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취업계 인정 요구가 부정청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대학생은 74.4%였다. 이들 중 80.2%는 "김영란법이 본인의 취업 준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또 88.3%는 "대학에서 취업계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취업 준비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재학 중인 학교에서 관행으로 취업계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답변이 78.9%에 달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취업계 인정 비율은 39.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 후 각 대학의 대응 방식은 제각각이다. 정확한 기준이 없다. 교육부는 학칙을 개정해 조기 취업자 학점을 인정하는 것을 대학 재량에 맡겼다.

단국대와 세종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은 조기 취업자들의 학점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일부 학칙을 개정한 학교들은 법 규제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학칙을 개정하지 않은 학교들은 통상 교수들의 재량에 맡기고 있어 취업 준비생들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국내 대표대학 서울대는 학교에서 조기취업자에게 취업 확인 공문을 발급해준다. 하지만 확인 공문과 별개로 학점 부여 여부는 교수 재량이다.

한 서울대생은 "최악의 경우 취업이나 학위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A교수는 "원칙적으로도 결석을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며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학생들의 부탁 자체를 받아들이기도 부담스러워 학기 시작 때부터 미리 (취업계 인정이) 안된다고 공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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