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정부부양론'…금융시장 격변 맞이하나

머니투데이 주명호 기자 2016.10.2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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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銀통화정책 "성장률 회복 실패"…재정지출 확대 한계 지적도

각국 정부의 재정지출 정책이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기조로 자리잡은 중앙은행의 통화부양책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데 실패했다는 판단이 높아지면서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성장정책의 중심에 서면 글로벌 금융시장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몇 년 간 이어졌던 통화 경제시대가 막을 내리면 금융시장에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23일(현지시간) 진단했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중앙은행을 통한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 및 기업들의 지출 확대를 도모했다. 정부 지출시 늘어날 부채 규모를 우려해서다. 덕분에 글로벌 자산가격은 대부분 가파른 상승세를 올렸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발생했던 일시적인 '긴축짜증'(tantrum)을 빼면 주식, 채권 가격은 상승세를 지속했다.

하지만 금융시장과 달리 근본 목표인 성장세 회복에는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저금리에도 가계 및 기업들은 지출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다. 시중은행들은 저금리로 안그래도 악화한 수익이 또다시 타격을 입었다.



마이너스금리를 도입한 유로존과 일본의 경우 시중은행들의 주가는 연초 이후 각각 20%, 29씩 급락했다. 애버딘애셋매니지먼트의 제임스 아데이 포트폴리오매니저는 "완화책 지속은 전혀 '윈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책자들은 다시 정부지출 확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달 초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례적으로 영란은행(BOE)의 양적완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양적완화가 부동산 등 투기 자산가격은 부풀리는 반면 이자소득을 줄여 빈부격차를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인프라구조 및 주택 분야 지출 등 재정정책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지난 9월 잭 루 미국 재무장관은 "정책자들은 이제 재정정책을 어떻게하면 최적으로 배치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재정정책 확대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과거 각국 정부의 지출 삭감을 부르짖었던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이제는 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6일 IMF·세계은행 연례회의 개회식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등 재정력 여력이 있는 나라는 이를 사용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부양책을 촉구했다.


투자 전문가들도 입장이 바뀌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때 채권왕이라고 불렸던 빌 그로스 야누스캐피탈 포트폴리오매니저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었다며 이제는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로스는 2011년만해도 미국 국채를 팔아치우고 영국 국채를 "폭발물 침대 위의 휴식"에 비유하는 등 정부지출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사라신&파트너스의 가이 몬슨 수석투자자는 "우리는 신세계를 향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조프 켄드릭 연구원은 "재정 확대는 전 세계적인 성장동력을 크게 급변시킬 것"이라며 "이는 '노멀'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미 시장에서는 변화의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채시장이 단적인 예다. 이달 메이 총리의 양적완화 비판 이후 영국 국채금리는 가파른 상승세를 펼쳤다. 올 여름 대부분 마이너스 영역을 보였던 독일 10년물 국채는 0.007%로 오르며 사상 최저를 벗어났다.

주식시장은 움직임이 지금보다 더 폭넓어질 수 있다. 재정정책 회귀시 정상 수준으로 다시 올라올 기준금리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투자자들은 재정정책과 관련된 공공 인프라구조와 직접적인 수혜 관계에 있는 기업들에 주목하고 있다. S&P500지수내 건설 및 엔지니어링 종목들은 올해 들어 18% 상승해 지수 상승률인 4.8%를 크게 웃돌았다.

원자재시장도 재정지출로 인프라구조사업이 늘면 수요 강세가 예상된다. JP모간애셋매니지먼트의 스테파니 플랜더스 유럽시장 수석투자전략가는 "기준금리 전망이 커지고 수익률 곡선이 다시 가팔라지면 신흥시장에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글로벌 성장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중앙은행들의 저금리기조가 아직은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본다. 재정정책이 여전히 수많은 정치적 저항에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까미낙의 디디에 생조르주 이사는 막대한 공공부채로 "재정정책 범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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