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머니투데이 좀비비추 동네북서평단 시인 2016.09.2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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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17> '프리다 칼로'…존재의 상실로 인한 또 하나의 페르소나

편집자주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책이 회사로 옵니다. 급하게 읽고 소개하는 기자들의 서평만으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속도와 구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읽고 소개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서 모였습니다. 머니투데이 독자 서평단 ‘동네북’(Neighborhood Book). 가정주부부터 시인, 공학박사, 해외 거주 사업가까지. 직업과 거주의 경계를 두지 않고 머니투데이를 아끼는 16명의 독자께 출판사에서 온 책을 나눠 주고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북 독자들이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 또는 독후감으로 또 다른 독자들을 만나려 합니다. 동네북 회원들의 글은 본지 온·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동네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에 선정된 책들로 구성했습니다. 인문학의 첫걸음에서 좀 더 깊은 안목까지 기를 수 있는 책들은 전국 도서관이 엄선해 추천한 ‘내 마음의 양식’들입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강렬한 태양의 도시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책장을 넘기는 일이 쉽지 않다. 불편한 그림들이 줄줄 딸려온다. 대부분 상처투성이의 자화상이다. 그러므로 프리다 칼로를 읽는 일은 그녀가 보낸 일생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일이다. 한 번 빠지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흡입력이 그녀가 내뿜는 아우라일 것이다.



그녀가 내게로 온 것은 10년 전쯤이다. 우연히 블로그에서 그녀를 보게 되었고,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 그림들은 흡사 여성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빠져 있었다. 이번 여름 예술의 전당에서 ‘프리다 칼로전’을 본 후로 나는 또 한 번 그녀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행복보다는 슬픔의 유전자로 가득한 삶이 주는 어떤 영감이 나를 끌어들인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불우함으로 가득한 삶. 그녀는 여섯 명의 딸 중 셋째로 태어났으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유모의 손에 키워진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핍박과 착취를 당하고 있던 멕시코 역시 디아스 정권의 장기적인 독재와 폭정, 흉작으로 몹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녀에게 불운의 그림자는 너무 일찍 찾아왔다. 여섯 살 되던 해 척추성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 불구가 된다. 그리고 열여덟 살 하굣길에 버스사고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전혀 다른 길로 흘러든다. 그 사고로 프리다는 허리 쪽 척추가 세 군데나 부러졌고, 왼쪽 발 11군데 골절상, 오른 발은 탈구되었고, 왼쪽 어깨는 빠지고 골반뼈도 3군데나 부러졌으며, 버스 손잡이용 쇠막대는 자궁을 관통했다.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어머니가 병실 침대에 달아준 거울로 자신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프리다는 의학 공부를 하기 위해 멕시코 최고 명문교육기관인 국립 예비학교 프레파라토리아에 들어간다. 하지만 큰 사고로 인해 화가의 길로 들어서고, 그곳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처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게 된다.

무려 21살이나 연상이었던 디에고는 바람둥이인 데다 세 번째 결혼이었다. 디에고는 공산당원 활동과 함께 주로 벽화를 그렸고, 프리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하지만 프리다의 여동생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등 프리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이혼한다. 그러나 또 재결합하는 등 디에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처이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디에고. 프리다가 디에고에게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술이라는 알 수 없는 공기였을까 사랑이었을까.


그녀의 그림 ‘나의 디에고’, ‘디에고와 나’, ‘디에고와 나 그리고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몇 개의 작은 상처들’에서 디에고는 지울 수 없는 화인처럼 박혀있다. 프리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디에고는 늘 다른 여자를 꿈꾸는 눈이 세 개인 괴물이다.

또한, 그녀는 여자로써 아이를 낳지 못하고 몇 번의 유산의 아픔을 겪는다. ‘헨리포드 병원’, ‘프리다와 유산’, ‘나의 탄생’은 그렇게 자신과 이어지지 못하고 피 흘리며 사라져버린 아이를 그리고 있다. 그녀의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피의 흔적’은 어쩌면 그녀의 삶 혹은 멕시코의 태양처럼 존재의 상실로 인한 또 하나의 페르소나인지 모른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지독하다고 해야 할까. 평생 불구의 몸으로 그녀를 살게 했던 힘은 내면의 상처를 꺼내 그림을 그린 일이었을 것이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마지막 이 한마디는 죽음보다 삶을 선택한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메시지다. 그녀 나이 마흔 일곱이었다.

* 대전 둔산도서관 선정
◇프리다 칼로
= 박서보·오광수 감수. 재원 펴냄. 64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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