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김범석과 쿠팡, '100년 기업의 꿈' 이룰까

머니투데이 송기용 부장 2016.05.1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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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김범석과 쿠팡, '100년 기업의 꿈' 이룰까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도 물류센터를 짓고 쿠팡맨을 채용하는 것은 혁명을 일으켜 무언가 남기겠다는 각오가 있기 때문이다." "적자가 지속된다면 실패로 끝나겠지만 구조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면 지금의 투자는 아름다운 스토리가 될 것이다. 쿠팡은 당초 생각했던 목표대로 잘 가고 있다."

지난해 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서울 강남 테헤란로 본사에서 만난 김범석 쿠팡 대표는 패기만만했다. 30대 후반(1978년생)의 나이 탓도 있지만 7살때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 재학 시절 창업한 회사를 뉴스위크에 매각하는 등 도전적으로 살아온 삶의 궤적을 엿볼수 있었다.



언론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와의 만남을 앞두고 가장 궁금했던 것은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로켓배송, 쿠팡맨 등 물류에 집착하는가였다. 택배회사를 이용하면 비용도 아끼고 여러모로 좋을텐데 굳이 수천억원을 쏟아부어 물류센터를 짓고 수천명의 쿠팡맨을 고용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답은 간단했다. "고객감동을 위해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이윤을 위해 배송 등 핵심부문을 외부에 맡겼고 그 과정에서 고객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투자는 고객에게 놀랄만한 감동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 감동을 전달하는 주인공인 쿠팡맨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로켓배송을 할 수 밖에 없다." 김 대표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박리다매를 신봉하는 유통업체들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도전정신이 분명했다.



김범석과 쿠팡이 던진 도전장은 업계에 큰 울림을 줬다. 소셜커머스, 오픈마켓 등 온라인 업체는 물론이고 롯데·신세계 등 오프라인 업체까지도 쿠팡을 주목했다.

급기야 대형마트 1위 이마트는 지난 2월 쿠팡을 겨냥한 가격전쟁을 선포했다. 기저귀, 분유, 커피믹스 등 생필품 최저가를 선언한 것. 이마트-홈플러스간 '1원전쟁' 등 동종업계 경쟁은 빈번했지만 이종업계를 타킷으로 한 싸움은 처음이다.

4월에는 SK그룹까지 '타도 쿠팡' 대열에 합류했다.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오픈마켓업체 11번가가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거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쿠팡처럼 직접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는 직판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온·오프 유통업체들이 이처럼 '쿠팡 모델로 쿠팡을 잡겠다'고 앞다퉈 나서는 것은 업계 변화를 쿠팡이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팡의 앞날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최근 공개된 쿠팡의 2015년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은 225% 증가한 1조1338억원으로 이커머스 최초로 1조원 벽을 돌파했지만 영업적자가 5470억원을 기록했다. 쿠팡은 물류센터와 로켓배송 투자비용이 적자의 90%라며 사업확장을 위한 선제적 투자라고 해명했다.

업계 시각은 다르다. 2013년 1억5000만원에 불과했던 적자가 2014년 1215억원, 2015년 547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이 가기 전에 보유현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쿠팡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선보이거나 신규 투자를 유치하지 못할 경우 1-2년 안에 문을 닫을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당시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객에게 놀랄만한 감동을 주는 것과 함께 직원들의 손주때까지 일하는 '100년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쿠팡에 열광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면 감동을 주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객 감동이 쿠팡의 생존을 담보할 수는 없다. 쿠팡이 팬택, STX, 웅진 등 화려하게 피어났다가 무너진 기업 전철을 밟지 않고 김 대표 바람처럼 아름다운 스토리로 끝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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