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궁궐, 살아 숨쉬는 문화 브랜드로

머니투데이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 2016.05.16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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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궁궐, 살아 숨쉬는 문화 브랜드로


소중한 것일수록 더 오래 안전하게 보존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최적의 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연구와 시도가 있었고 그 결과 다양한 유·무형 유산들이 현재를 사는 우리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낸 방법은 박제하듯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가치를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영국의 버킹엄 궁이 유럽의 상징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궁전이 영국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2000년 전 지어진 이탈리아 대형 원형 경기장 아레나는 세계 최대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재탄생한 뒤 현재 매년 평균 50만 명이 다녀가는 이탈리아 대표 문화 브랜드로 자리하고 있다.

찬란했던 우리나라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 자원으로 궁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궁궐은 단순히 왕이 기거하던 장소가 아니라 수준 높은 당대 문화와 기술을 집대성한 결정체이자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장소다. 그저 외형만을 보존하려는 노력으로는 그 자체로 역사이자 문화인 궁궐을 후대에 온전히 전승할 수 없을 것이다.



궁궐을 우리나라의 대표 고품격 문화자원으로 육성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은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2회를 맞이한 궁중문화축전 역시 이러한 노력으로 마련된 행사다. ‘오늘, 궁을 만나다’라는 주제 아래 10일간 4대 궁과 종묘에서 공연 체험 의례 등 궁중 문화의 정수를 녹여낸 문화예술 체험 행사들이 각각의 특성에 맞게 준비됐다.

이번에 펼쳐진 궁중문화축전은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종묘가 지닌 특성에 맞게 주제별로 기획된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 체험과 탐방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다채롭게 구성된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고궁의 살아 움직이는 역사와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축전 현장을 찾은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도심 속 궁궐에서 느낄 수 있는 색다르면서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궁중문화축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지난해 축전 기간에 약 46만 명의 관람객이 궁을 방문했는데 올해는 무려 72만여 명이 궁궐에서 펼쳐지는 축제를 즐겼다. 특히 이번 축전에 고궁과 종묘를 찾은 외국인은 17만 명이 넘는데 지난해보다 무려 2배가 넘는 수치다. 우리 궁궐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은 물론 축전에서 펼쳐지는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국내는 물론 외국인 관람객들까지 매료시키는 것이다.


전 세계 수십만 명의 관람객들은 이번 궁중문화축전을 통해 단순히 우리나라 궁궐의 외형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왕이 그러했듯 잔치를 열고 수라를 즐기며 살아있는 궁을 느꼈을 것이다. 궁궐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오늘날 생생한 경험으로 되살아나 모두와 공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동양화에서는 그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배접(褙接) 방법을 사용한다. 원하는 형태를 부조로 만들고 그 위에 화선지를 여러 겹 포개 붙이는 방법이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을 통해 궁궐이 공감을 바탕으로 한 생명력을 지닌 문화유산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 모든 국민이 궁궐을 하나의 문화 브랜드로 인식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면 앞으로 수백 년 동안 국민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문화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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