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전관 자처 사건 수임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2.0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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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징계 취소 소송에서 승소…법원 "징계사유 일부 인정 안돼"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담당 판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사건을 수임했다가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실이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법원은 징계의 이유가 된 혐의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이승택)는 정모 변호사(50·연수원 23기)가 "징계 결정을 취소하라"며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정 변호사는 수임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재판장 이름을 거론하며 연고를 내세운 혐의 등으로 2014년 6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가 법무부 징계위에 이의신청을 낸 끝에 같은 해 7월 과태료 2000만원으로 감경됐다.

그는 2012년 8월 부동산 강제경매 사건 항고심의 의뢰인에게 "(재판장과) 경남지방에서 함께 근무한 선·후배 사이인데, 서울에 와서도 지금까지 월례 모임을 하고 있다"며 "함께 일하는 (같은 법무법인 소속) 다른 변호사는 나보다 친분이 더 두텁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월례 모임 비용은 우리가 모두 부담하는데, 그 재판부 사건을 한 건도 못 해서 재판장이 '사건을 하나 갖고 오라'고 했다", "마침 이 사건이 들어와서 어제 재판장에게 얘기했더니 들어오면 바로 결정해주겠다고 했다", "서류를 넣으면 바로 승소가 된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 변호사의 장담과 달리 의뢰인은 항고심에서도 패소했다.

이 밖에도 정 변호사는 2012년 9월 다른 변호사들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한 형사사건의 피고인에게 "실형 안 받게 해 줄 테니 걱정 말라"며 사건을 수임한 혐의도 받았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재판·수사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과의 사적 관계를 드러내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이를 어겨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아 징계를 통해서만 제재할 수 있다.


정 변호사는 혐의를 부인하며 행정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혐의를 사실로 인정했다. 의뢰인의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정 변호사가 실제 재판장과의 관계를 내세웠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승소를 장담한 혐의도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 변호사의 징계 이유가 된 또다른 혐의가 사실과 다르다는 판단 아래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징계 원인이 된 여러 혐의 가운데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만큼 기존의 처분은 지나치게 무겁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법무부 징계위의 처분은 징계 사유로 인정되는 비위의 정도에 비해 균형을 잃은 무거운 것으로 사회 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 변호사는 춘천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수원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2012년 퇴직했다. 퇴직 후에는 법무법인을 설립했고, 2013년에는 유명 연예인이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다가 상대방이 고소를 취하해 불기소 처분된 사건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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