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역사적 판단 맡기기는 부적절…효율성도 떨어져"

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 2016.02.0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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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리포트][현재진행형 역사논란]④ 법조인들 "역사적 판단, 법정 밖에서 구해야"

편집자주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전쟁이 총성 없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도 피해자와 유족이 고통받고 있는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판단이 외교적·정치적으로 확정되지 못하면, 당사자들은 결국 사법부에 판단을 구한다. 때로는 이미 정치적으로 결정된 판단에 불복한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다. 역사적 판단이 법정에서 갈린 사례들을 모아 봤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1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1


근·현대 사건들과 관련한 역사적 판단을 사법부에 구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규정을 사법부에 맡기는 것이 부적절할 뿐 아니라 심한 사회적 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거나 원하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 당사자들이 불복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과거 유신정권 당시 긴급조치에 따라 무고한 옥살이를 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84)이 대표적이다. 백 소장은 1974년 개헌청원 서명운동본부 발기인으로 유신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중앙정보부에 적발돼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1975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2013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로 백 소장은 국가의 배상을 받을 길이 막혔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해 3월 '긴급조치는 국가행위인 만큼 이를 발동한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만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해 국가가 배상할 민사적 책임이 있지 않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백 소장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백 소장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 판결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냈다. 대법원 판결과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그러나 백 소장의 판결이 인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비슷한 취지의 헌법소원이 이미 여러 차례 기각된 바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1997년 해당 조항에 대해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한 재판만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 한정위현 결정을 내렸고,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사법적 절차를 통해 피해를 보상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수도권 지방법원의 판사는 "법원은 어디까지나 엄격하게 배상 책임이 있는지를 판단한다"며 "도의적·윤리적 책임까지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정치·외교적으로 합의해야 할 배상 문제까지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갈등을 해소하고 역사적 문제를 판단하는 기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건의 경우 당사자들이 고령인 경우가 많은 만큼 국가가 나서서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은 2013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구하는 조정을 국내 법원에 신청했지만, 일본 정부가 재판에 응하지 않는 사이 2명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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