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선생 가라사대,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6.02.0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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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 SKT 디바이스 지원단장 "로봇다운 로봇이 '관계' 비즈니스 바통 잇는다"

편집자주 기계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까. 얼마전까지만해도 명확한 답변을 못 내린 이 질문에 이젠 "그럴 수 있다"는 쪽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구적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라 부르는 ‘인공지능(AI)’를 올해 ICT(정보통신기술)계 화두로 꼽는다. AI가 인간을 도울 것이라는 낙관과 인간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비관이 교차한다. 확실한 것은 AI와 이를 기반으로 한 '지능형 로봇'의 활약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기업들은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등으로 훈련시킨 AI로 시장 패권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들은 이전보다 더 편리한 서비스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다른 한편에선 인간이 AI에 밀려 무능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피할 수 없는 AI 시대, 우리는 어떻게 맞이하게 될까.

전국 144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된 로봇을 통한 SW코딩교육 현장/사진=SK텔레콤 <br>전국 144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진행된 로봇을 통한 SW코딩교육 현장/사진=SK텔레콤 <br>


“로봇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존재죠. 우리 아이들은 공부하면서 놀고, 놀면서 공부하기를 원해요. 로봇은 그렇게 해줄 수 있거든요. 이미 개발된 컴퓨터 언어로 코딩을 배울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에듀케이션(education·교육)이죠.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자신이 짠 프로그램으로 로봇을 작동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들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요. 에듀케이션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오락)가 절묘하게 결합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로봇입니다.”

SK텔레콤에서 신규 사업을 주도하는 박일환 디바이스 지원단장의 말이다. 지금의 로봇은 SW(소프트웨어) 코딩교육의 흥미를 돋우는 도구로 쓰인다. 하지만 박일환 단장은 머지않아 로봇에게 ‘맞춤식 가정학습’을 받는 날이 온다고 전망했다. 정년퇴직자의 인생설계를 로봇이 도맡지 말란 법도 없다. 박 단장의 예측대로 이뤄진다면 2030년 즈음엔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TV 교육채널 EBS를 보며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흔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왼쪽부터)스마트로봇 '아띠', '알버트'/사진=SK텔레콤 (왼쪽부터)스마트로봇 '아띠', '알버트'/사진=SK텔레콤
◇'에듀테크' 포석 깐다=SK텔레콤은 지난해 하반기 미래창조과학부,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스마트로봇 ‘알버트’, ‘아띠’를 통한 SW(소프트웨어) 코딩교육 연수를 전국 수석교사를 비롯한 초·중등 교원을 대상으로 14차례 실시했다.
박 지원단장은 “세계 SW교육 트렌드는 직접 제작·편집해 창의적인 산출물을 만드는 데 맞춰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선 알버트·아띠를 활용한 SW 돌봄교실 운영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2012년부터 교육과 기술을 결합한 이른바 ‘에듀테크(Edu-Tech)’ 시장을 공략한다는 차원에서 중국과 대만, 스페인, 프랑스 등 해외지역에 이 로봇을 수출해왔다. 국내 교육 현장에 적용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년 초·중·고등학교에 SW교육이 의무화돼 충분한 수요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과 머뭇거리면 안방시장마저 모조리 외산에 내줄 수 있다는 긴장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실제 세계 최대의 장난감업체인 레고가 초등학생용 로봇 교육 도구 ‘위두’를 필두로 국내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나라밖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최근 미국은 ‘코드(Code) 프로젝트’ 추진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 CEO(최고경영자) 마크 주커버그 등 업계 주요 인사가 SW 교육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영국은 올해부터 컴퓨터 과학이론을 체계화한 SW 코딩교육을 5~16세 학생들의 필수과목으로 지정·운영한다.

이 시장이 올해 가장 '핫'한 시장으로 떠오르자 SK텔레콤은 박 단장의 진두지휘 아래 시장 공략에 적극 뛰어드는 모습이다.


◇로봇다운 로봇 '인간의 벗' 되다=박 단장은 1983년 삼보컴퓨터 재직시절부터 2011년 MP3 플레이어 제조사 1세대 명가인 아이리버의 수장으로 지내는 동안 첨단 ICT(정보통신기술) 기기들을 가장 근접한 곳에서 지켜봤다. 이번 사업은 그가 그린 로봇산업 서막에 불과하다.

2014년 아이리버가 SK텔레콤에 인수된 후 박 지원단장은 이동통신과 디지털기기를 접목한 새로운 먹거리 사업 구상에 착수했고, 로봇에서 그 가능성을 엿봤다. “로봇은 미래를 만들어갈 중요한 컴포넌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박 단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여러 가지 로봇이 나왔지만, 로봇 청소기를 제외하면 성공한 것이 거의 없다. 그는 “로보틱스(로봇과 공학의 합성어) 장점을 살려줄 다른 기술들이 부족했다”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최근 로봇을 로봇답게 할 수 있는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음성인식 UI(사용자 환경)가 개선되고, 사람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AI)을 가질 수 있는 머신러닝 기술들이 나오면서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죠. AI 로봇은 인간과 대화를 나눌 때 창의적인 답변을 해줘요. ”오늘 뭐 먹을까“라고 물었을 때 오늘도 내일도 ”자장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전처럼 단지 로봇의 관절이 얼마나 잘 움직이나 정도를 보는 차원이 아닌 거예요. 이 기술들이 로봇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거죠.”

박 단장은 이동통신사 차세대 사업모델이 로봇이라는 데 확신을 갖고 있다. 휴대폰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 비즈니스’ 기반이었다면, 이 바통을 앞으로는 로봇이 이어갈 것이라는 신념이다.

“하버드대학이 1938년부터 75년 간 추적조사를 했어요. 연구주제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뭘까’였죠. 이 과정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돈도 명예도 아니였죠. 행복의 요소는 딱 하나 ‘관계’였어요.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열고 진심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관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필수 항목이었죠. 하지만 나날이 각박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쉽지 않은 얘기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어쩌면 미래에는 그 역할을 인간이 아닌 로봇이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로봇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친구’거든요. 감성 로봇은 내 속에 깊은 얘기도 모두 들어줄 고마운 벗이 될 겁니다.”

이어 그는 로봇이 명예퇴직 등으로 늘어난 중년 실직자들을 보듬는 역할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오늘은 로봇 2버전이겠지만, 17년 뒤 7버전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더욱 입체적인 교육을 하고 있을 겁니다. 어릴 때 SW코딩과 숫자, 글자를 알려주던 로봇 선생님이 커서는 제2의 인생을 돕는 평생학습 선생님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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