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이 김연아·조성진 만들었다?…기부금의 경제학

머니투데이 김태형 이코노미스트 2015.11.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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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생각 다른느낌]기부금 세제혜택 확대로 영재 발굴 및 교육공공화 촉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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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올해 10월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 중의 하나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조성진이 당당히 1위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김연아의 피겨 올림픽 제패와 같은 음악계의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김연아와 조성진이 우승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둘 다 타고난 영재라는 점과 스스로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온 부모님과 그들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본 스승들의 지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동안 묵묵히 지원해 온 기업들의 후원과 물질적인 기부가 큰 힘이 됐다는 사실을 잘 모르거나 간과합니다.

실질적 올림픽 2연패이자 최초의 올 포디움(All Podium)으로 역대 최고 여자싱글 피겨선수로 평가받는 김연아도 초기에는 제대로 된 연습장이 없이 오로지 개인 돈으로 훈련과 경기를 소화하느라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런 김연아 선수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은 협회나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2007년 KB국민은행은 3억원의 후원금을 지급했으며, 이후 삼성전자의 후원과 광고로 안정적인 여건이 형성되면서 그 천재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조성진은 그의 재능을 일찍 발견한 자강산업의 민남규 회장이 케이디켐(주)을 통해 2009년 부터 매년 2000만원 가량을 후원해오고 있습니다. 민 회장은 산악인 고(故) 박영석씨를 지원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모교인 고려대의 'KU-오정 에코리질리언스센터' 기금으로 총 50억원을 기부약정 하는 등 문화예술과 교육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기부천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는 2005년 당시 만11세인 조성진을 금호영재콘서트 독주회를 통해 데뷔시켰고 2008년에는 조성진의 실내악팀인 필로스 트리오와 유리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풍부한 연주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지난 5월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1위를 차지한 임지영과 피아니스트 김선욱, 손열음 모두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수혜자입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고(故) 박인천 회장이 1977년 설립한 이래 박성용 명예회장이 1998년 금호영재콘서트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박삼구 회장까지 꾸준히 영재육성을 위한 문화예술에 투자해오고 있어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1997년부터는 장학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습니다.

김연아와 조성진의 우승은 이런 기업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실천과 문화예술에 자금을 지원하는 메세나(Mecenat) 활동이 서서히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메세나는 고대 로마의 외교관이었던 가이우스 마이케나스(프랑스 발음으로 메세나)가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등 문인들을 후원한 것에서 유래됐는데, 1966년 미국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 일부를 문화예술 활동에 할당하면서 현대적 의미로 발달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메세나 활동은 르네상스의 발판을 마련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 후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만일 메세나 활동이 기업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로 널리 확대된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조성진과 김연아 같은 영재의 활약을 볼 수 있고 사회경제 전반의 경쟁력도 높힐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교육불평등을 시발점으로 ‘수저논쟁’을 일으키며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청년들을 금·은·흙수저로 구분하며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좋은 학교에 값비싼 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할아버지가 부자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입니다.

통계청이 올해 2월에 발표한 2014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초·중·고등학교의 사교육비는 약 18조2000억으로, 소득별로는 월소득 700만원이상 가구는 사교육참여율이 83.5%, 월평균지출액이 42만8000원인 반면 100만원미만 가구는 사교육참여율이 32.1%, 월평균지출액이 6만6000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사교육비의 증가와 불균형은 가계의 큰 부담으로 다가와 소비여력을 감소시키고 교육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희망인 청년들이 출발점에서부터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고 가난이 청년들의 짐이 돼서는 안됩니다.

문화예술과 교육전반에 걸친 후원과 기부의 활성화는 부유층의 교육독점 폐해를 보완하여 영재 뿐 아니라 모든 청년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부활동을 단지 홍보나 자기만족으로 폄하하지 말고 사회적 공헌에 대한 혜택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법인의 지정기부금 손금산입 한도는 소득의 10%이며, 개인은 2014년부터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해 소득의 15%(3천만원 초과분 25%)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소득공제 형태로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은 세액공제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 프랑스도 기업은 60%, 개인은 66% 정도 세액 감면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 소득세의 기부금 세액공제율을 상향조정 하자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정갑윤·김관영의원 등이 소득세법 개정법안을 대표발의해 여야 정치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정부는 기부금 공제율을 올리면 의료비·교육비(15%)나 보험료(12%) 등 다른 세액공제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부금은 공동체의식으로 타인을 위해 지원하는 금액인데 이것을 본인을 위해 사용한 의료비, 교육비, 보험료 등의 항목과 비교해서 형평성을 따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기부문화가 자리잡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세제혜택을 확대하여 자발적인 민간지원을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부금의 손금산입과 세액공제 비율을 높혀 기업과 개인이 후원할 토양을 마련한다면 기부금의 활성화를 통한 교육공공화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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