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가장' 공자는 어떻게 성인(聖人)이 됐을까

머니투데이 홍찬선 CMU유닛장 2015.11.05 05:45
글자크기

[공자 이코노믹스]<20>공자가 '소년소녀 가장'에게 주는 메시지

편집자주 세계 문명이 아시아로 옮겨오는 21세기에 공자의 유학은 글로벌 지도 이념으로 부활하고 있다. 공자의 유학은 반만년 동안 우리와 동고동락하며 DNA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에 공자라면 얽히고설킨 한국 경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 해답을 찾아본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나는 태어나자마자 알고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我非生而知之者).”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날 때부터 뭔가 많이 알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성인이라고 칭송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고자 한 말이다.

공자는 바로 이 말 다음에 자신을 “好古, 敏而求之者也(호고, 민이구지자야)”라고 밝혔다. “옛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그것(옛것)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자신을 “뭔가 하고자 마음먹으면 밥 먹는 것도 잊고(發憤忘食, 발분망식), 기뻐서 그것에 깊이 빠져들어 모든 걱정을 잊어(樂以忘憂, 낙이망우), 나이 먹어 늙어가는 것도 모르는(不知老之將至, 부지노지장지) 사람”()이라고 했던 것과 통한다.



◇‘소년가장’이었던 공자, 세계 4대 성인(聖人)이 되다

공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의 출생 및 성장과정과 관련이 깊다. 공자는 매우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후처였으며,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어머니마저 일찍 사망했을 때 그는 아버지 산소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라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아버지 산소에 어머니를 합장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공자는 12, 13세 때부터 그의 가족을 보살피고 책임져야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소년가장’이었던 것. 그에게는 이복 형(나중에 그 형의 딸을 그의 제자 중 한명인 남용(南容)에게 시집 보내주었다)이 있었지만 경제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년가장이었던 공자는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어린 시절에 천(賤)해서 이것저것 다 해보았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다 잘 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성공적 삶을 살았다. 무엇이 ‘소년 가장’ 공자를 ‘생이지지’라고 평가받는 성인으로 키웠을까. 크게 3가지 요인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긍정마인드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15살 때 학문에 뜻을 두고(十五而志于學, 십오이지우학), 틈틈이 배우고 익혔다(學而時習之, 학이시습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學而不思則罔, 학이불사즉망)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 사이불학즉태)라고 경계하며 배움과 생각을 함께 닦았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다운 앎(知之爲知之, 不知謂不知, 是知也)이라 했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문(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爲之文也)이라고 강조했다.


◇공자의 성공 3대 요소=긍정마인드, 피나는 노력, 애인신인(愛人信人)

둘째로 피나는 노력이다. 그에게는 적당히가 없었다. 그의 애제자 중 한명인 자공(子貢)이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냐(그만하면 됐지 않느냐)”는 뜻으로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라고 묻자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난하면서도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아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未若 貧而樂 富而好禮, 미약 빈이락 부이호례)”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 말을 듣자 자공은 『시경』의 유명한 구절인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거론했다. “학문의 길은 끝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논어』 (위정편)).



셋째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믿음이다. 공자는 도교 무리들에게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14년 동안 주유철환(周遊轍環, 수레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님)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더 이상 유세할 곳도 없어지자 고향으로 돌아가 후진양성과 저술에 집중했다. 그가 남긴 『서경(書經)』 『시경(詩經)』 『주역(周易)』 『춘추(春秋』는 『예기(禮記)』와 함께 ‘오경(五經)에 꼽히고 있을 정도로 동양 정신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소년, 소녀 가장이 매우 많다. 호기심 많고 부끄럼 많아 꿈을 꾸고 키워야 할 사춘기에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일은 엄청난 고통이다. 부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아들, 딸들을 소년, 소년가장으로 만들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다. 천재지변이나 부득이한 사고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소년, 소녀 가장이 된 아이들은 사회와 국가에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 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 그늘진 어린 시절의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공자가 소년소녀가장에게 주는 메시지=‘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라’



아울러 소년, 소녀 가장들도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한다. 공자처럼 소년가장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 사례가 매우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큰 부자와 위대한 학자, 정치가들 상당수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현대그룹을 만든 고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아산(俄山, 지금은 북한 지역)에서 맨손으로 서울로 와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도 “해보기나 했어?”라는 불굴의 의지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결국 큰 성공을 이루었다. 정 회장이 배운 것은 『천자문』과 『소학』 『논어』 등 뿐이었다. 요즘 교육제도로 보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지만 삼성그룹을 만든 고 이병철 회장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창업가 겸 기업가로 존경받고 있다.

맹자는 “하늘이 어떤 사람을 큰일에 쓰려면 먼저 힘든 고통을 주어 그 사람을 시험하고 단련시킨다(『맹자 (고자(告子)장하))”고 했다. 어려움 없이 큰일을 맡겼다가 제대로 해내지 못해, 일을 맡은 사람은 물론 그 일로 영향을 받는 공동체 모두가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소년가장’이었던 공자가 오늘 날 ‘소년소녀 가장’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런 말이 될 것이다. “세상은 꿈꾸는 사람의 것이다. 지금 비록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그건 하늘이 나를 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훈련시키는 과정이다. 될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여러분도 나처럼 될 수 있다. 비록 그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를 수 있다…”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