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나와도 취직 안되는 세상…"美 하버드 나와야"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5.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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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로드]<41>'학벌=능력' 취업 선발기준 타파하기

편집자주 i-로드(innovation-road)는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한다(Innovate or Die)'라는 모토하에 혁신을 이룬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살펴보고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이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 “이젠 SKY나와도 취업하기 힘들어. 하버드 정도는 돼야...”

올 하반기 공채시즌이 시작됐다. 대기업이 저마다 스펙 보다는 ‘능력’ 중심의 인력채용을 강조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은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 면접에서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려고 고민이 많다. 게다가 좁아진 취업문 탓에 남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증명해야할 판이다.

그런데 ‘그놈의 능력’이란 게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가령 미인대회나 창업경진대회 선발기준처럼 학벌 몇 점, 스펙 몇 점, 외국어 능력 몇 점 등과 같이 항목별로 점수를 구체화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다.



결국 취업준비생들은 제각기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더 높은 학점을 취득하고 더 높은 TOEIC점수를 따고 더 긴 인턴을 거치고 더 많은 자격증을 취득한다. 여기에 감동적인 자기소개서 작성과 자신감 있는 면접 태도는 필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의 임원은 SKY 출신 3분의2가 삼성전자 입사에서 탈락하고 오히려 지방대 출신이 더 유리하다고 털어 놓는다. 그럼 이제 학벌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SKY 정도의 학벌로는 취업하는데 필요충분한 능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지방대의 경우는 일정 숫자만큼 할당이 존재한다). 그만큼 취업문이 좁아졌다. 최근 만난 전 직장 선배는 이젠 하버드 정도는 나와야 된다며 그래서 자신의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진학시키려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능력을 증명할 학벌의 기준이 이젠 SKY에서 아이비리그로 올라간 셈이다.

대기업이 아무리 능력 중심의 인력 채용 원칙을 발표해도 취업문이 좁아진 탓에 ‘학벌=능력’의 선발기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대기업 임원 인사 때 단골메뉴로 나오는 기사 헤드라인 중의 하나가 바로 ‘상고 출신 혹은 지방대 출신, 별 달았다’이다. 이런 게 기사거리가 된다는 거 자체가 ‘학벌=능력’이라는 편견이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뜻한다.

# “당신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기업의 오너라면 능력 있는 사람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 미국의 경우 포춘500기업 중에서 톱 100위에 드는 기업의 CEO 가운데 아이비리그 출신은 채 3분의1도 안 된다. 이는 학벌이 능력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를 두고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최고의 기업일수록 사람을 뽑을 때 학벌(education)이나 지식(knowledge) 보다 특성(character)을 중시한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똑똑한(smart) 사람을 뽑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회사에 대한 사랑(love)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주식투자자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도 지능(intelligence)이 많은 사람을 뽑지만 만약 진실성(integrity)이 결여돼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는 카톨릭 예수회(Jesuit) 수련을 거친 사람이 미국의 한 회사의 정보책임자(CIO)로 채용된 실화가 소개됐다. 예수회는 로마카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출한 수도회다.

이 회사의 대표는 면접에서 지원자에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CIO로서 어떤 경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았다. 대신 지원자가 받은 예수회 수련이 어땠는지, 그가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예수회 창시자가 누구인지 등등을 물어봤다. 2시간에 걸친 면접을 통해 회사 대표가 파악한 것은 지원자의 특성(character)이었을 뿐 학벌이나 스펙이 아니었다.

이 회사 대표는 직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대신 지원자의 호기심(curiosity)과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열정(passion)을 파악하고 2~3류 대학을 나왔어도 이런 특성을 갖춘 사람을 기꺼이 뽑는다고 밝혔다.

# "그 친구는 저보다 스펙이 낮은데 합격하고 저는 왜 떨어졌나요?"

SKY·아이비리그 학벌이 없거나 아니면 SKY도 부족하다 싶을 때 차별화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취업준비생들이 매달리는 게 스펙이다. 그래서 저마다 대학 졸업을 연기해가며 빵빵한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 모두가 외국어, 인턴, 공모전 등 비슷비슷한 스펙을 쌓으면서 스펙의 평준화 현상이 벌어졌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으로도 스펙 쌓기 광풍에 대한 시선이 결코 곱지 않다.

그러자 이제는 자기소개서로 초점이 옮겨졌다. 최근 금융권의 자기소개서 작성 난이도가 신춘문예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금융문예’라고 부른다는 웃지 못할 소리마저 들린다. 이러다보면 스펙 평준화가 이뤄졌듯이 머지않아 자기소개서도 평준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모두 천편일률적인 내용과 마치 똑같은 사람이 쓴 것같은 스타일 등등. 이쯤되면 표절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렇듯 취업시장에서 스펙과 자기소개서 평준화가 이뤄지면 결국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또다시 학벌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더 높은 학벌을 요구한다. SKY가 부족해서 아이비리그 졸업장을 따고 학사 졸업장이 약해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결국 '학벌=능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기업에 지원했지만 입사에 탈락한 대부분 취업준비생들은 대기업 인턴 경험, 높은 외국어 점수 등 꽉찬 스펙을 갖춘 사람들이다. 자기소개서도 신춘문예 수준급이다. 그런데 많은 것을 갖춘 이들일수록 더 헷갈린다. 내가 왜, 무엇이 부족해서 떨어졌는지 모른다. 결국 '그놈의 '학벌' 때문인가?' 라고 자위하고 만다. 지원자의 호기심, 감성,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걸 증명해 보일 길이 없기도 하려니와 묻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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