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태완군 부모도 악성 민원인이었다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15.07.2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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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공무원 같은 소리 하지마라"

 대구 황산테러 피해아동 故 김태완 군의 가족과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4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지난 1999년 5월 대구의 한 골목길에서 6세 아동이 신원불상의 남성으로부터 황산테러를 당한 뒤 숨진 태완이사건은 사건당시 공소시효 15년을 지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사진= 뉴스1 대구 황산테러 피해아동 故 김태완 군의 가족과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4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지난 1999년 5월 대구의 한 골목길에서 6세 아동이 신원불상의 남성으로부터 황산테러를 당한 뒤 숨진 태완이사건은 사건당시 공소시효 15년을 지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사진= 뉴스1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는 `1인시위`방식의 피켓팅을 하는 이들이 있다. 매일 출근하듯 오는 이들도 상당수다.

누군가는 호소문을 옆에 세우고 앉아 있고, 누군가는 지나가는 국회 출입자들에게 전단지를 돌린다. 그중엔 국회 직원들에게 유명한 욕쟁이 할아버지도 있다. 점심시간에 나타나 식사장소로 향하는 국회 직원들을 향해 한 두시간 동안 원색적인 욕이 섞인 불만에 가득찬 민원내용을 읇조린다. 신호등 앞에서 기다렸다가 신호 변경주기에 맞는 길이로 대사를 맞추기 때문에 듣기 싫어도 안 들을 수 없다.

대구황산테러사건 피해자인 김태완군 부모의 노력으로 일명 `태완이 법`이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태완군 부모도 대구 법원 앞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피켓팅 시위를 했다. 무심히 그 앞으로 지나가는 법원 관계자들과 변호사들 눈에는 태완군 부모도 흔한 `악성 민원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들은 `피해망상증`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다른 민원인들과 마찬가지로 태완군 부모 역시 처음엔 법적 절차를 따랐다. 그러나 증거부족으로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수사는 종결됐다. 불기소처분에 대한 재정신청은 기각됐고 재정신청 기각에 대한 재항고 역시 대법원서 기각됐다.



이정도 되면 대부분 포기하고, 가슴에 한을 안은 채 살아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주 일부는 이때부터 공무원들이 `악성 민원인`이라 부르는 부류가 된다.

법원, 행정기관 민원실에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고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국회의원실까지 찾아간다. `태완이법`은 국회의원실까지 잘 연결됐던 운 좋은 드문 경우다.

악성 민원인들은 가끔 지나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이성을 잃어 담당 공무원들에게 기피대상이 되고 만다. 태완군 부모처럼 `성과`를 얻어내는 민원인은 극소수다.


공무원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스스로가 공무원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가끔 보좌진들에게 이런 말로 꾸중한다.

“공무원같은 소리 하지마라”

지역에서 올라오는 민원 중에는 가끔 현행 법상 불가능한 `무리수`인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라도 공무원처럼 `법`과 `규정`만 따져선 안 된다는 얘기다. 불법만 아니라면 다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민원인의 얘기를 성의껏 들어주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란 취지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라는 엄청난 변화를 이끈 `태완이 사건`은 정작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종결됐다. 소급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악성 민원인`이었던 태완군 부모가 수 십년간 법조계에선 불가능하다던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만들어냈다. 공무원의 민원 판단기준인 `법과 규정`은 `불변(不變)`이 아니다.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기준이다.

`태완이법`통과가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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