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 언덕 위 효심가득한 99칸 명품고택

머니투데이 경주(경북)=김유경 기자 2015.07.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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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의 한옥 여행]<9>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향단'

편집자주 지방관광과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체험 숙박시설이 2010년 이후 매년 150여곳씩 증가해 2014년12월 기준 964곳에 달한다. 한국관광공사는 2013년부터 우수 한옥체험숙박시설 인증제인 '한옥스테이'를 도입했다. 관광공사가 선정한 한옥스테이와 명품고택은 총 339곳. 이중에서도 빛나는 한옥스테이를 찾아 한옥여행을 떠나본다.

향단 전경/사진=김유경향단 전경/사진=김유경


향단 바깥사랑대청에서 바라본 사랑채 /사진=김유경기자향단 바깥사랑대청에서 바라본 사랑채 /사진=김유경기자
독일여행에서 하루가 꼬박 걸리더라도 찾아가고 싶었던 노이슈반슈타인성처럼 언젠가 꼭 하룻밤 묵고 싶은 욕심을 내내 품게 했던 명품고택이 있었다.

마을 전체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상북도 경주시 양동마을 초입에 위치한 '향단'이다. 500~6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양동마을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이중에서도 보물 제412호로 지정된 '향단'은 양동마을과는 별개로 호기심을 자극했던 곳이다.



통상 기대가 크면 만족하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향단이라면 기대를 해도 좋을 듯하다. 일반 건축물과 다르게 한옥은 살아있는 느낌이 있는데 향단은 만나본 명품고택 중에서도 명품으로 꼽힌다.

늦은 시간 흐린 날씨에 보이는 게 많지 않았는데도 향단의 솟을대문을 지나 협문에 오르면서부터 가슴이 설렜다.



향단 바깥사랑대청에서 바라본 전경/사진=김유경기자향단 바깥사랑대청에서 바라본 전경/사진=김유경기자
향단 바깥사랑대청에서 내려다본 양동마을 /사진=김유경기자향단 바깥사랑대청에서 내려다본 양동마을 /사진=김유경기자
밤 11시 가까이 된 시간이라 대충 씻고 누울 생각이었지만 주인장이 싱싱한 포항 꽃새우를 구워주신 데다 다식까지 준비돼 있어 다실로 쓰고 있는 바깥사랑대청에서의 심야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벌레 한 마리를 내쫓기 위해 열기 시작한 사랑대청 삼면의 문이 모두 열렸고 촛불이 켜졌다. 시원한 밤공기가 삼면으로 통하고 풀벌레 소리가 커졌다. 다실에서 안주인과의 이야기꽃은 새벽 1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시간을 보고 깜짝 놀라 그제서야 다실 옆에 있는 욕실을 안내받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오자마자 가방만 던지고 나온 잠잘 방을 찾지 못한 것. 안채에는 안방 외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는데 이 방은 안채 대청을 지나야 나온다. 안채 대청은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중문의 왼쪽으로 있는데 대청에도 문이 있어 찾지 못했던 것. 그동안 봐왔던 한옥의 구조와 달라 달밤에 본의 아닌 숨바꼭질을 한 것이다.

양동마을 언덕 위에 세워진 향단은 1540년 중종이 충신 회재 이언적의 노모를 위해 지어준 99칸짜리 집인데, 노모를 위해 독특한 구조로 건축됐다. 집안 구석구석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 없고 바람 길이 막힌 데가 없다. 7월 한낮에 이 집의 시원한 공기와 마을 어귀의 후덥지근한 공기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향단에서 느꼈던 가장 큰 매력은 숙면이다. 집에서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편인데 향단에서는 불을 끄자마자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들었다. 7월의 한여름 밤이었지만 향단은 시원했고 잠자는 방안에는 난방을 틀어 포근했다.

향단 안마당 /사진= 김유경 기자향단 안마당 /사진= 김유경 기자
향단 제식청/사진=김유경 기자향단 제식청/사진=김유경 기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난 아침. 잠깐이지만 안마당으로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온다. 누구라도 사진작가로 변신하게 되는 시점이다.

향단은 일반인들도 묵을 수 있도록 방을 내주고 있는 '한옥스테이'지만 이 마을 사람들도 쉽게 드나드는 집은 아니다. 양동마을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반촌마을로 전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보존이 잘 된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향단은 임금이 하사한 집인데다 이언적이 노모를 모시고 있던 동생 농재 이언괄에게 물려준 종택으로 이언괄의 16대손이 거주하고 있다. 예를 중시하고 자부심이 높은 지역이어서 이곳에서 거드름을 피웠다간 쫓겨나기 십상이다.

향단은 그냥 하루 자는 숙박업체가 아니라 반가의 문화를 체험하고 힐링하는 곳이라는 게 안주인 설명이다. 향단은 평지가 아닌 언덕에 지은 집이라 사랑채와 안채가 행랑채보다 1m 정도 높은 곳에 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이동하려면 행랑채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행랑채 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떨어진 사람이 없는 건 양반이라면 조심해야 한다는 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주인은 "향단에 오면 남녀노소 누구나 양반이 되기 위해 조신해 진다"며 웃었다.

보물 안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본격적으로 향단 구석구석 들여다보기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사대부들이 위상을 높이기 위해 대문을 크게 세운 것과 달리 향단의 대문은 경사진 언덕길 위에 작은 크기로 세워져 있다. 행랑채가 마당 오른쪽에 독립적으로 세워진 것도 일반 고택과 다르다. 이 행랑채는 안채 대청과 지붕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 안채를 가리고 있다. 대문과 행랑채 사이 중문을 들어서면 작은 마당과 돌계단이 나타나는데 이 계단을 올라서야 사랑채 마당에 들어설 수 있다.

사랑채와 사랑채 마당에서는 성주산과 아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동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민가에서는 쓰지 못했던 원기둥을 사용한 것과 천장의 섬세한 연꽃 모양 파련대공도 볼거리다.

특히 안마당 중심에는 커다란 장독이 하나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모든 좋은 기운이 모인다는 곳이다. 이 항아리에는 도라지, 옻, 민들레 등 백여 가지 약초가 담겨져 있다.

향단 사랑채에서 바라본 안방 /사진=김유경기자향단 사랑채에서 바라본 안방 /사진=김유경기자
향단 안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 /사진=김유경기자향단 안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 /사진=김유경기자
사랑채와 마주하고 있는 안방은 노모를 언제든지 뵐 수 있도록 집 정중앙에 배치했다. 이 때문에 안방 쪽마루 문을 열면 사랑채 대청을 통해 성주산 사계를 즐길 수 있고 마당위로 열린 하늘을 볼 수 있으며 안채 대청에서는 경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안방 뒤쪽에는 아궁이를 비롯해 옛날 물건이 가득한 부엌마당이 나온다. 지붕이 없는 야외부엌 형태이며 맞은편에는 2층 위에 제식청이 있다. 제사음식을 보관하던 곳으로 통풍을 위해 벽 대신 가느다란 문살을 촘촘하게 세워놓았다. 부엌마당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정지방이다. 영화 '방자전'이 촬영된 곳으로 앙증맞은 창문이 아기자기하다.

향단의 방들은 대체로 방 하나에 작은 마루를 하나씩 딸린 것도 특징이다. 잠을 자는 공간과 차를 마시는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행랑채는 사랑채 손님 수행원들이 주로 머물던 곳인데 여기에도 마루가 있으며, 창문을 열면 담장 너머로 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향단이 현대인에게 무조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보물이라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탓에 한옥스테이 객실로 내놓은 방은 총 9개인데 욕실은 여자용 1개, 남자용 1개, 공용 1개로 3개다. 욕실은 현대식으로 넓게 개조돼 좋지만 손님이 많을 때는 기다려야할 수도 있으니 감안해야 한다.

향단에서 숙박하려면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한 외국인은 오는 11월 이 집에서 머물기 위해 벌써 예약을 해놓은 상태다. 안채 안방의 경우 1박에 50만 원에 달하지만 향단 손님 중 외국인이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는 대단하다. 특히 양동마을과 경주 등 주변 볼거리가 많아 2박3일을 지내도 심심치 않다.

양동마을 언덕 위 효심가득한 99칸 명품고택
☞'향단' 숙박팁
▶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1-83 (강동면)
▶ 문의 = 010-6689-3575, 054-762-3415
▶ 가격 = 10만~50만원 (1~2명)
▶ 체험 프로그램 = 연꽃차를 마시며 차 예절을 배우는 다도체험과 한복을 입고 절하는 등의 예절교육 체험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1인당 5만원.
▶교통 = 서울역에서 포항역까지 KTX는 하루 8회 운항한다. 이동 시간은 2시간30분 정도. 기차역에서 향단까지는 택시로 25분소요. 서울역에서 신경주역까지 KTX는 하루 10회 운항하며, 이동시간은 2시간 10분정도다. 기차역에서 향단까지 버스로 이동할 경우 40분소요.

향단 전경/사진=김유경기자향단 전경/사진=김유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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