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챔피언' 난립, 이대론 안된다…정치권 문제제기

머니투데이 배소진 기자 2015.03.2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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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히든챔피언, 히든 리스크'①] '겹치기 지원'에 목표량 채우기 경쟁까지

'히든챔피언' 난립, 이대론 안된다…정치권 문제제기


지난해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뉴엘 사태'에 이어, 우양에이치씨가 상장폐지되는 등 '히든챔피언' 제도가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부 각 부처와 정책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막대한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상황에 대해 예산을 다루는 국회에서도 제도의 난립과 관리감독 부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할 움직임이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국회 창조경제활성화특별위원회에 참석한 부좌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중소기업청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히든챔피언 기업 선정 과정에서 문제 있는 기업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청이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만들겠다며 '히든챔피언 육성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선정된 기업들이 폐업하거나 대표 배임·횡령 등의 문제로 주식거래 정지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기청이 2011년 사업 대상기업으로 선정한 자동차 부품업체 캐프는 신임 경영진이 창업주를 배임·횡령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2013년 선정된 전자저울업체 카스 역시 대표이사 횡령사건으로 현재 주식거래가 중지됐다.



태양광 웨이퍼 제조업체인 네오세미테크는 분식회계로 2010년 상장폐지됐고, 제조업체인 한진피앤씨, 기륭전자, 지우미디어, 지더블유, 동현전자는 지난해 모조리 폐업의 길을 걸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육성하고 선정하는 '한국형 히든챔피언'사업도 대표적인 논란의 대상이다.

수은이 2013년 히든챔피언 육성대상자로 선정한 업체 플랜트설비업체 우양에이치씨는 지난 4일 만기가 도래한 127억원 규모 전자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고, 17일 상장폐지됐다. 지난 1월 상장폐지된 터치스크린 생산업체 디지텍시스템스 역시 수은이 선정한 히든챔피언 육성대상자였다. 지난해 사기대출로 물의를 빚었던 모뉴엘은 수은이 2012년 '히든챔피언' 인증기업으로 선정한 곳이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이 수은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은의 '히든챔피언' 사업의 경우 지금까지 선정이 취소된 29개 업체 중 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갔거나 분식회계 혐의를 받은 곳은 7곳이다. 또 당기순손실이 지속되거나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등 재무성과가 부진해 탈락한 업체가 6곳이다. 지난 2월말 기준 이들 취소기업들에 대한 수은의 여신잔액은 총 2328억원에 달한다.

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인증과 지원정책은 지난 정부에서도 존재했다. 그러다 박근혜정부가 중소·중견기업 육성을 통한 '창조경제'를 주창하면서 각 부처는 경쟁적으로 히든챔피언 육성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행된 제도만 △글로벌강소기업(중소기업청) △월드클래스300(중소기업청) △글로벌전문기업(산업통상자원부) △한국형 히든챔피언(수출입은행) △프론티어 챔프(정책금융공사) △KDB 글로벌 스타(산업은행) △신보스타기업(신용보증기금) △수출강소기업 Plus+500(기업은행) △K-sure 글로벌성장사다리(한국무역보험공사) △코스닥 히든챔피언(한국거래소) 등이다. 여기에 시중 은행권의 지원 프로그램까지 더하면 10여개가 훌쩍 넘는다.

대부분 수출위주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한도 및 금리 우대, 수출신용보증, 해외마케팅 및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각 기관마다 대동소이한 기준으로 이름만 다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수요기업 혼선과 재정집행 비효율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10월 산업부와 중기청이 개별적으로 운영했던 사업을 통합, 성장 단계별로 지원하겠다는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 대책'을 새로 발표했다. 그러나 산업부와 산업은행으로 통합된 정책금융공사 소관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들은 여전히 각 기관별로 유지되고 있다.

제도는 많지만 혜택을 받을 정도로 요건을 갖춘 업체는 한정돼 있어 '겹치기 지원'도 상당수다.

중기청의 '월드클래스300'에 선정된 업체는 R&D(연구개발) 자금으로 5년간 최대 75억원을 지원받는 동시에 수은,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이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우대를 받는다. 신청시 가점을 주거나 신청자격 요건 및 재무요건 심사를 면제해주는 식이다. 한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이력이 다른 기관에 '보증'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예산중복도 문제지만 자칫 부실기업이 선정될 경우 연쇄적으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관마다 내세운 목표치를 채우려 경쟁하다보니 애당초 재무상태가 열악하거나 성장잠재력이 높지 않은 업체까지 무리하게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고, 손해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원석 의원실 관계자는 "실적을 위해 대상 업체를 찾아다니며 심지어 먼저 돈을 빌려준다고 제안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은 히든챔피언 선정에서 취소된 기업 29곳 중 절반 이상인 16곳은 금융지원 사용계획이 없어 스스로 탈퇴를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대상기업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 얘기"라고 꼬집었다.

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13일 '히든챔피언과 미래산업, 독일에서 배우다'를 주제로 국회에서 열린 '크로스파티 토론회'에서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중소기업에 머물러 혜택을 계속 받으려는 이른바 '중소기업 피터팬증후군'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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