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의 역설'…연말 경비원 '편법 계약' 기승

머니투데이 신현식 기자 2014.12.3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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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휴게시간 설정·외주화 등 임금낮추기 백태…면세 등 적극 활용해야

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가득 찬 음식물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가득 찬 음식물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 시간이라도 쉬게 해주면서 휴게 시간을 늘려야지…."

서울 노원구의 경비원 A씨는 한숨을 쉬며 푸념을 늘어놨다. 경비원의 경우 24시간씩 2인 1조 맞교대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무 시간 중에 무급 휴게 시간을 설정해 임금을 낮춘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부터 개정 최저임금법에 따라 경비원 임금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무급 휴게 시간을 종전보다 1~3시간씩 늘리는 '편법'이 더욱 심해졌다. A씨는 "야간 시간당 임금은 주간의 1.5배"라며 "야간휴게시간을 2시간(주간 3시간) 설정하는 아파트가 많다"고 말했다.



야간 휴게 시간 2시간이면 개정 최저임금법에 따른 인건비 상승효과를 대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은 "노원지역 대다수 아파트는 내년 경비원 임금 상승을 휴게시간 연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무급 휴게시간에 경비원들이 사실상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노원노동복지센터 조사에 따르면 설정된 휴게시간을 100% 전부 사용하고 있다고 답한 경비원은 15%에 불과했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경비원들은 야간 휴게시간에 경비 초소에서 불을 끄고 쉬곤 하는데 술에 취한 주민이나 방문객들이 '일 안 하냐'며 눈치를 주기 일쑤"라며 "형식상 휴게시간을 만들어 임금을 줄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저임금의 역설'…불안에 떠는 경비원들

내년부터 최저임금 상승과 최저임금법 변경에 따라 경비원 인건비 상승이 예정되는 가운데 실제 아파트 현장에서는 무급 휴게시간 연장과 외주화 등의 편법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경비원들의 최저인금은 지난해 대비 19% 인상된다. 올해까지 최저임금의 90%만 적용받던 아파트 경비원 등 감시·단속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내년부턴 최저임금 100%를 적용받게 됐고 시간당 최저임금도 2014년에 비해 7% 인상된다.

임금 상승의 한가지 효과는 '해고'다. 새정치연합 등 정치권에서는 19%의 임금인상이 경비원 19%의 감원을 가져올 것이라며 전국 25만여 경비원(통계청 추산) 가운데 5만여명이 해고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입주민 서비스의 질과 직결돼 있는 만큼 경비원의 수를 무작정 줄일 수는 없기 때문에 각 아파트 단지는 △무급 휴게시간 연장 △외주화 △자동화 기기 도입 등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을 조사됐다.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이다.

경비 업무를 외주화 하며 문제 해결을 경비업체에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 노원구의 D아파트는 기존에는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직접 경비원을 고용해 왔지만 이달부터 경비 업체에 용역을 맡겼다. 기존에 일하던 경비원 12명은 모두 그만뒀다.

아파트 관계자는 "용역업체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하루 4시간의 휴게시간을 경비원들에게 주고 새 경비원들은 그 시간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며 "입주민들이 벌써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화를 통해 경비절감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노원구의 S아파트는 기존 32명의 경비원을 13명으로 줄이고 자동문과 CCTV, 비상벨, 적외선 감지기 설치 등으로 경비를 대신하기로 했다.

아파트 관계자는 "설치비가 많이 들기는 하지만 경비원 숫자를 줄여 절약되는 비용으로 2년동안 충분히 상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며 "주민들의 서면 동의를 얻어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아파트 경비원 구조조정 실태조사 발표 및 향후 대책을 위한 범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 기자회견에서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스1지난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아파트 경비원 구조조정 실태조사 발표 및 향후 대책을 위한 범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 기자회견에서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해결책은 있다…면세 혜택 등 적극 활용해야

경비원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면서 주민 부담은 높이지 않은 사례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성북구 D아파트는 지난달 입주자들이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해 경비원들의 고용불안 걱정을 선제적으로 해결했다.

이 아파트 입주자들은 내년부터는 전용면적 135㎡ 이상인 아파트 관리비에서 경비·청소 용역에 부가가치세가 붙는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용역업체를 쓰지 않고 경비원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이같은 결정으로 가구당 5만원으로 예상되는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게 됐다. 가구당 경비비 부담은 1만원~1만5000원 증가했을 뿐이다.

성북구 S아파트는 아파트 안 가로등과 지하 주차장 조명을 교체해 아낀 전기세로 경비원들의 임금을 보장키로 했다. 심재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지난 몇년간 수억원의 전기세를 아꼈다는 사실을 들어 주민들을 설득했다"며 "전체 관리비에서 경비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고 내년도 각 가구당 경비비 추가 부담액은 월 5000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심 회장은 "경비원은 능력이 없어 하는 일이 아니라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마지막 직업"이라며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인데 단순한 비용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원섭 고려대 노동복지정책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상승과 일자리 부족이 동시에 일어나는 문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문제"라며 "관련 세제와 사회보험을 정비해 사용자에 인센티브를 주고 해고 폭을 줄여야 실업에 따른 복지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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